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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로리 May 05. 2020

살아있어서 다행이야

 달간 마음이 지옥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매일이 불구덩이 같았다. 지나가는 사람들 목을 조르고 싶었다. 아무나 쳐다봐도 눈물이 나고, 가스레인지의 불꽃만 바라봐도 화가 났다. 심리상담을 매주 토요일마다 하는데, 화요일부터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시간이 어찌나 느릿느릿 가는지 애가 탔다. 토요일이 되면 이산가족 상봉하듯 달려가 선생님을 만났고, 역시나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오열하다가 한 시간을 흘려보냈다.


삶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었다. 눈 뜨고 일어나는 일 자체가 고통스러워, 아침마다 천장이 무너졌으면 했다. 사는 것이 완벽한 지옥이라면, 최소한 천국과 지옥을 선택해볼 수 있도록 죽은 상태가 낫지 않을까. 침 샌프란시스코에서 휴가를 보내고자 몇 달 후 떠나는 비행기표를 사두었던 참이었다. 우울의 끝에서 나는 큰 결심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도시의, 가장 좋아하는 장소인 금문교 위에서, 떨어져 죽어야겠다.


금문교는 자살자가 많기로 유명한 장소다. 다리 위로 올라가면 설계자의 의도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위험하다. 형하공간(해수면부터 다리 노면까지의 거리)이 무려 67미터인 다리다. 안개가 자욱해서 시공간감이 사라지고, 바닷바람에 현수가 위태롭게 흔들리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검은 파도가 집어삼킬 듯이 튀어 오른다. 한국 설화의 삼도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레테의 강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애초부터 사람이 도보로 건너게 해서는 안 되는 다리였다. 나는 그곳을 다시 걷고자 하는 것이다.


가족이 나의 정신을 이렇게 파괴했으니, 그에 상응하는 복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식이 당신보다 먼저 삶을 놓으면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겠지. 조금은 슬퍼하고 어쩌면 많이 괴로워하겠지. 나에게 던졌던 말과 행동들을 후회하겠지. 그리고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나의 부재를 그리워하겠지. 그때의 나는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버리고 싶을 정도로 나약하고 비겁했다.


마음의 결정을 내렸으니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자살명소에 나 하나 더하는 것쯤이야 별 일 없겠지. 울의 집에 무엇을 남기고 미국에 갈지, 다리로 떠나는 길에 여권과 지갑과 휴대전화는 어떻게 할지, 마지막 편지에 무엇을 적을지, 다리 위에서 어떻게 떨어지는 것이 빠르고 효율적 일지를 고민했다. 상담 선생님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나의 치료에 매진하고 계시는 분에게 죄송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 계획을 말씀드리면 출국 전에 강제입원부터 당할 것 같았다.


많은 이들은 스스로 생을 버리는 사람들에게 이기적이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그 마음을 지나쳐 본 나는 알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는 나를 아껴주는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이 눈에 들어오지 못한다. 소중한 주변인들이 나의 죽음으로 인해 받을 충격을 가늠할 겨를이 없다. 오로지 나의 고통에만 사로잡혀 이 생을 놓을 생각만이 온몸을 휘감는다. 이렇게 갉아먹히는 삶을 살면서 주변을 괴롭히느니, 내가 차라리 사라지는 것이 지구의 평화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믿게 된다. 영화 <인셉션>에서 무의식에 심는 기억처럼 떨쳐버릴 수 없다. 그 수렁에서 헤어 나오는 것은 정말,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다행히도 출국 전의 상담 치료에 중요한 진전이 있었다. 분노와 불안이 눈에 띄게 줄어들면서 죽음에 대한 충동도 사그라들었다. 이렇게 고생해서 나아졌는데 지금 죽기엔 조금 아깝다고 생각했다. 많은 괴로움을 서울에 내려놓고 샌프란시스코에 갔다. 바람이 유난히 많이 부는 날이었다. 금문교에서 발아래의 태평양을 바라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집채만 한 파도가 이리로 내려오라고 울부짖고 있었다. 혼잣말을 하면서 다리 위에서 많이 울었다.


나는 지금 죽지 않을 것이다.

끝까지 나의 상처를 혼자 치료할 것이다.

이 고통을 이겨내고, 언젠가 다시 행복해질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와 오랜 시간이 지났다. 치료가 진전을 거듭한 덕분에 나는 덜 울고 덜 힘든 일상을 이뤄냈다. 자살 충동에 휩싸였던 내가 나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언젠가 상담 선생님에게 고백했다. 선생님, 그때는 영원히 지옥에 갇혀 살게 될 것 같았어요. 그런데 지금 이렇게 나아진 것을 보세요. 그때 제가 다리에서 떨어졌다면 이 기쁨을 미처 알지 못했을 거예요. 얼마나 다행인가요.


앞으로도 나는 스스로 죽지 않을 것이다. 계속 앞으로 걸어가 더 나은 영화를 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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