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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로리 Apr 30. 2020

다시는 부대찌개를 무시하지 마라

한식의 세계화는 누가 추진하고 있는 것일까. 한국에 거주하는 토종 한국인 전문가들이 미처 다녀보지 못한 세계를 그리며 계획을 세우는 것은 아닐까. 외국에 사는 한국 교민들의 의견, 그러니까 한류를 눈 앞에서 지켜보는 이들의 목소리는 얼마나 반영된 것일까. 그랬다면 적어도 아시아에서 비빔밥과 김치가 대표 주연배우로 등장하지는 못할 텐데.


회사 일로 홍콩에 한동안 파견을 간 적이 있었다. 한국인이 일하러 왔다는 소문을 듣고 많은 동료들이 내 자리에 구경을 왔다.


- 안녕, 너 코리안이라며?


- 응 맞아.


- 반가워. 있잖아, 너 코리안이면 혹시 아미 스튜 만들 줄 아니?


출근 첫날이었고 아침 열 시가 되기도 전이었다. 업무에 대한 이야기보다 아미 스튜, 그러니까 부대찌개를 만들 줄 아냐는 질문이 더 급한 것이다. 그녀의 눈빛이 초롱초롱했다. 니가 코리안이면 진짜 한국 토종 레시피를 알고 있겠지? 그걸 나에게 지금 당장 알려줄 수 있겠지?


당시의 나는 집에서 부대찌개를 해 먹진 않았다. 한국에서 부대찌개는 밖에서 저렴한 가격에 라면사리까지 넣어 즐겁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닌가. 집들이를 하지 않는 이상은 누가 강낭콩과 간고기를 바리바리 사 와서 부대찌개를 끓이는가. 출근 첫 질문으로 레시피 요청을 받는 나는 급한 대로 구글에서 괜찮아 보이는 레시피 링크를 찾아 알려줬다. 그렇게 오후가 되었다. 또 다른 동료가 자리로 다가왔다.


- 안녕, 내가 아침에 인사를 못했네.


- 응 안녕.


- 홍콩 오피스에 출근한 걸 환영해. 와보니 어때?


- 아직까진 괜찮아. 첫날이라서 이것저것 자료 좀 보는 중이야.


- 그렇구나. 뭐 첫날이니까. 그런데 너 코리안이라며? 혹시 집에서 아미 스튜 만들어 먹니?


나는 홍콩 생활 첫날부터 알았다. 아미 스튜 무서운 스튜.


그렇게 아미 스튜로 시작된 홍콩 파견을 마무리하고, 거주지를 싱가포르로 옮겼다. 강남스타일이 쏘아 올린 한류의 공은 그 사이 동남아시아에서 열기구만큼 커져 있었다. 너도나도 한식당을 찾고 간단한 한식을 해 먹는다. 내 친구는 주말 사이 순두부찌개의 레시피를 물어보았다. 나는 한국 마트에서 레토르트 찌개양념을 사라고 추천해 주었다. 친구들은 국적이 이러면 내가 김수미 선생님 정도 되는 줄 알고 있다. 나도 집에서 순두부찌개 끓이고 싶으면 네이버 검색해야 하는데.


그러나 순두부찌개도, 뚝배기 불고기도, 돼지고기 김치찌개도 아미 스튜를 이기지는 못한다. 우선 햄과 고기와 라면이 들어가기 때문에 재료에 대한 거부감이 없고, 육수에 건더기를 넣어 국물이 우러나도록 끓여내는 조리 방식이 범아시아권에서는 대체로 익숙하다. 아시아를 벗어나 생각해도 스팸의 달달짭쪼름한 맛을 낯설다고 느끼는 지구인이 존재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외국인 친구들은 싱가포르의 비싼 한식당 가격에 기함하고 종종 집에서 부대찌개를 만들어 먹는다. 장하긴 한데 제조법에 대한 나의 조언을 듣지 않는 것이 문제다. 그들이 만드는 아미 스튜는 한식 부대찌개와 훠궈 사이의 어디쯤으로, 김치 국물에 중국식 피시볼, 팽이버섯, 새우, 말린 유부 등닥치는 대로 넣는다. 맛있다니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닌데, 이쯤 되면 아미 스튜를 만들겠다는 건지 냉장고 털이용 요리를 하겠다는 건지 의심스럽다.


어느 날 친구는 한국 마트에서 김치를 샀는데 배추가 아니라 무만 들어있었다며(깍두기도 포장지에 김치라고 쓰여 있다), 그래도 국물 맛은 비슷하길래 그걸로 부대찌개를 끓였다고 했다. 무를 건져 먹었는데 자기가 만들고도 너무 맛있어서 놀랐다는 얘기에 귀를 의심했다. 집에서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 거야. 마스터셰프 코리아에 외국인 특례로 출전시켜야 하나 싶었다.


아무튼 해외에서 부대찌개의 위상이 이 정도다. 비빔밥과 김치는 감히 비빌 수가 없다. 다시는 아미 스튜를 무시하지 마라. 부대찌개에 도전할 수 있는 후보는 잡채, 쌈장, 치맥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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