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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urgundy Dec 22. 2020

[영화] <맨체스터바이더씨>(2017)와 이발소 그림



프랑스 사회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2002)를 들어보셨나요? 못 들어보셨더라도, 그가 주장하는 내용을 살펴보시면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는 생각이 드실지도 몰라요. 그는 1979년 저서 <구별 짓기(La distinction)>(1979)를 통해 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며 프랑스 대표 지성인으로 자리매김 합니다. 그가 주장하는 바를 간략하게 설명하면, 많은 교육을 받은 상류층의 사람일수록 대중적이지 않은, 고급예술을 선호하며, 교육 수준이 낮은 서민층일수록 대중적인 예술을 좋아한다는 것이었어요.


다시 말해, 음악, 회화, 문학 등 예술에 있어서 선호도는 교육 수준, 혹은 사회적 계급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지요. 달리 말하면, 예술에 대한 각기 다른 선호도를 개인의 취향 차이로만 볼 수는 없다는 뜻이예요. 예술 작품을 이해하고 또 향유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문화적 능력이 있기 때문이지요.이러한 문화자본은 교육과 훈련을 통해 얻을 수 있으며, 사회화 과정을 통해 습득하고 나면 장기간 유지되는 습성을 가지고 있어요. 미술, 그 중에서도 고급미술(high art)은 이러한 면에서 문화자본이 될 수 있겠지요.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우리는 부자이거나 교육을 많이 받은, 현실에서는 잘 찾아보기 힘든 비범한 캐릭터들을 주로 접하죠. 그래서 주인공 집에서 우리는 프린트도 쉽게 구입할 수 없을 만큼 비싼 그림들이 걸려있는 것을 봅니다. 그렇지만 오늘 소개해드릴 영화는 예외예요. 2017년 개봉한 <맨체스터 바이 더 씨(Manchester by the Sea)>라는 영화인데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과 각본상 등을 수상하며 평단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줄거리를 간략하게 살펴보면요. 남자주인공 리(케이시 에플렉)는 보스턴에서 아파트 관리인으로 일하며 혼자 사는, 아무런 낙이 없이 쓸쓸하게 살아가는 남자예요. 그런 그는 형 조(카일 챈들러)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맨체스터로 갑니다. 형의 임종을 지키지 못해 실의에 빠져있던 그는, 조카 패트릭(루카스 헤지스)의 후견인으로 자신이 지목되었음을 알게 되어요. 그렇게 패트릭과 리는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한 지붕 아래에서 살게 돼요. 리는 원래 밝고 사람도 좋아하는 호방한 성격이었지만, 자신의 실수로 집에 화재가 나게 되고, 자녀들이 모두 죽게 되는 비극적인 일을 겪은 뒤, 마치 자신의 죗값을 치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수도승처럼 절제된 삶을 살아요. 아내 랜디(미셸 윌리엄스)와는 이혼을 했고요. 자녀들을 잃은 리와 아버지를 잃은 루카스, 죽음 후에 남겨진 두 남자는 이겨낼 수 없는 슬픔, 죄책감, 후회, 외로움 등으로 견뎌내기 힘든 삶을 살아나가요.



이 영화에서는 각자의 집이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게 되는데요. 등장인물들이 블루 칼라 노동자인만큼 사는 집 역시도 등장 인물을 충실하게 설명하는 도구가 되어요. 그들의 집에 걸려있는 미술 작품은 사실 제대로 화면에 잡힌 적은 거의 없어요. 그 대신, 인테리어 소품처럼 인물 뒤편으로 흐릿하게 보여질 뿐이죠. 이 그림들에는 공통점이 있는데요. 소위 ‘이발소 그림’이라고 불릴 법한 것들이라는 점이예요. ‘이발소 그림’이란, 이발소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촌스러운 그림, 혹은 수준 낮은 그림을 뜻하는데요. 누구나 알법한 명화나 민화를 복제한 것도 많고요, 무명 화가들이 저급한 퀄리티로 그려낸 그림들이랍니다. 이런 작품들을 일컬어 ‘키치(Kitsch)’라고 부르기도 해요. 가짜 복제품, 통속적인 작품, 저급 일러스트레이션 등 조악한 대중취향의 작품들을 지칭해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배경 음악, 편집, 화면, 연출, 인물들의 덤덤한 연기까지, 억지 희망을 제시하지 않은, 실제 삶에 가까운 진솔한 영화인 것 같아요. 우리는 모두 한번쯤 마주하기 힘든 상처 때문에 특정 장소나 사람으로부터 도망쳤던 기억이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지속되고요. 리는 한 인물이 아물지 않을 것 같은 상처로부터 어떻게 조금씩 회복하며 살아가고 있는 지, 그 과정을 보여줍니다. 두 남자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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