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15년 개봉한 영화 <우먼 인 골드(Woman in Gold)>에 나온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의 작품에 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클림트는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작가들 중 한 명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작가지요! 빈 국제공항에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를 보지 못했다면 빈을 떠나지 말라”는 문구가 있을 정도라고 하니까요. 벨베데레미술관에 걸린 이 작품은 단 한번도 외국으로 대여된 적이 없다고 해요.
이 영화는 클림트의 작품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Adele Bloch-Bauer 1)>(1903~7)의 환수를 다루는 법정 이야기로, 실화를 기반으로 하여 더욱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는데요. 아델레 블로흐-바우어는 클림트를 후원했던 사람 중 한 명으로, 클림트가 초상화를 그려 주었어요. 그녀가 죽고 난 뒤 이 초상화는 나치에 의해 몰수당했고, 그는 이 작품을 조카들에게 남긴다는 유언을 남겼어요. 1998년, 그의 조카 마리아 알트만(헬렌 미렌)은 이 그림을 되찾기 위해 8년 여의 시간 동안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싸움을 시작합니다. 변호인으로는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마크 쉔베르크의 손자, 랜디 쉔베르크(라이언 레이놀즈)가 함께 했어요. 긴 분쟁 끝에 오스트리아의 박물관에 있던 이 그림은 마리아의 품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현재는 뉴욕의 노이에갤러리(Neue Galerie)에 소장되어 있어요.
구스타프 클림트는 금세공업자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빈 응용미술학교에서 회화과 수공예 장식을 공부했어요. 사실주의 화풍으로 장식미술을 하다가, 아버지와 동생을 1892년 잃고 난 뒤 작품 세계가 변화하게 됩니다. 그는 19세기 말 영국 프랑스 등에서 펼쳐진 아방가르드 미술 운동을 접하면서, 상대적으로 뒤쳐진 오스트리아의 미술의 보수성에 반발하게 됩니다. 이후 반 아카데미즘 운동을 하면서 1897년 빈 분리파(Vienna Secession, 1897-1905)를 결성 했어요. 클림트는 장식화가로 교육 받았지만, 그것에서 탈피하여 독자적 화풍을 구축했어요. 빈 분리파 작가들 작품은 조형적으로는 아르누보적 특성이 지배적이었으며, 이들은 순수미술과 응용미술을 통합해 미술과 생활의 총체적 관계를 증진시키고자 했어요. 또한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광기를 인간 실존의 핵심으로 조명하는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그는 성과 사랑, 에로티시즘을 주제로 작품을 다수 제작하였으나, 이는 당시 보수적 분위기에 맞지 않아 그가 살아있는 동안은 크게 주목 받지 못했어요.
그렇다면 이번에는 클림트의 작품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을 좀 더 가까이 들여다 보겠습니다. 모델의 얼굴과 상체 부분 등 전체 캔버스의 일부분만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나머지는 장식적 패턴으로 가득 채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작품입니다. 섬세하면서도 여린 인상과 강한 자존심이 돋보이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지요. 목에는 초커를 하고 있고, 삼각형 모양의 타이트한 금색 드레스를 입고 있어요. 미술사학자 엘라나 샤피라(Elana Shapira)는 삼각형, 계란, 눈과 아몬드의 형태 등은 에로티카의 상징으로 읽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금빛은 비잔틴의 모자이크를, 드레스에 있는 눈의 형태는 이집트의 문화를, 소용돌이 문양은 미케네 문명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화려한 금색의 색채 안에 둘러싸인 아델레 블로흐-바우어는 몽환적이고 아름답게 표현되어, 모델에 대한 화가의 애정이 엿보입니다. 이 작품은 2006년 에스티 로더 창업자의 아들 로널드 로더에서 1350만 달러에 팔려 역사상 가장 비싼 가격에 거래된 그림 중 하나가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