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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질랜드 외국인 Mar 20. 2019

겸손과 자신감 사이에서의 갈등

회사 내에서 기분이 언짢은 적이 있었다. 

일의 난이도가 1이라면, 나는 1.5만큼 일을 할 수 있고 그럴 능력도 있는 것 같은데, 왠지 다른 직원들은 나를 0.5로만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런 느낌은 내가 포함 되어야 할 것 같은 미팅에 참석 인원으로 포함되지 않았던 사소한 일에서 발생했다. 주위의 다른 팀원들이 미팅 룸으로 들어가는데 나는 쏙 제외 된 것이다. 


‘내가 왜 포함되지 않은 걸까? 나를 빼고 할 프로젝트가 지금 없을텐데?’ 

내 실력을 과소평가 해서 제외한 것인지, 아니면 의사소통 실력이 부족해서 프로젝트에서 제외 시킨 것인지 온갖 자격지심이 들었다. 끈질기게 나를 그 미팅에서 제외시킨 이유없는 이유를 찾았다. 그렇게 찾은 스스로의 잠정적 결론은 '영어', 영어를 내가 잘 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겠지라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현지인처럼 완벽한 영어를 하지 못한다면 외국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다른 것으로 커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성실함, 한국 인터넷 만큼 빠른 속도의 일처리, 조금 더 일터에 남아 오래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그렇게 하면 내가 말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알아줄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서는 겸손이 미덕이다. 

자신의 실력이 뛰어나서 그대로 표현하는 사람을 보면 한국 사람들의 대다수 반응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재수 없어.” 나 “너무 나대는 거 아니니?” 혹은 “너 잘났다.”

자신감을 나타내는 상대방에게 건방지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한국 전체에 공공연하게 퍼져 있다. 

기부를 해도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것이 미덕이고, "아유~ 차린 것이 없어서 어쩔까~" 라고 해도 차린 것 없다는 식탁에는 마치 전라남도식 반찬가지 수 저리가라 할 만큼 음식이 차려져 있다.


외국에서는 겸손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특히, 해외취업 하려는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PR을 하지 않으면 취직을 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자신감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 실력에 자신이 없어서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평생 살아왔기에, 내가 가진 예절 및 관습들이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특히, 여러 명이 참여하는 회의에서는 나의 ‘한국식 겸손’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한국의 회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해외 회사 미팅 분위기는 마치 돗대기 시장 같아서 당췌 끼어드는 틈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대화들이 빽빽하게 오간다. 

‘저 사람 말 끝나고 나서 내 의견을 말해야지’ 하고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 또 다른 사람이 껴 들어서 이야기 하고... 겸손하고 예의바른 한국인의 자세로 순서를 기다리다 보면 가마니가 되어 버린다. 이럴 때는 나도 적극적으로 끼어들어야 하지 않을까 라며 다음 번 미팅을 기약 하지만..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이 말을 빨리 하는 자리에 끼어 있다보면 기회를 얻기가 힘들다. 


겸손은 어쩔 때 사용하면 잘 차려진 멋진 미덕으로 보여 한국인이 자주 애용한다. 하지만 해외에서 일하면서 살겠다고 마음 먹은 이상, 소극적이거나 겸손한 태도로 일관 해서는 많은 것들이 해결 되지 않는다는 점을 매번 느낀다. 한국은 그렇게 해 와도 ‘누군가 알아주겠지’ 하며 살아도 상관이 없겠지만, 해외에서는 모든 게 불리한 점이 되었다. 언어부터 시작해서, 발음, 옷 차림, 행동, 버릇, 표정, 심지어 외모까지 다수가 아닌 소수에 속한다. 소수인 우리가 적극적으로 자신을 알리지 않고 자신감 있는 태도로 임하지 않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불편함과 고정관념에 시달릴 수 있다. 겸손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역량이 저평가 되길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위의 글은 올해 발간 된 책 <나는 뉴질랜드에서 일한다>에서 발췌, 편집하고 수정한 글입니다.

매주 수요일마다 연재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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