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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질랜드 외국인 Feb 12. 2017

엄마와 밀포드 트래킹

꼭 가져 할 것, 엄마와의 단 둘만의 시간

밀포드 트랙(Milford Track)이라고 하여 등산 좀 한다는 사람들은 한번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는 트랙이며 세계에서 꼭 해봐야 할 트래킹 TOP 10에 들 정도로 유명한 트랙이다. 필자는 2015년 초에 친구들과 다녀 왔었는데, 다녀 온 사진을 엄마에게 보내주자 엄마도 하고 싶어하는 눈치라 뉴질랜드 관광도 시켜드릴 겸 일찌감치 밀포드 트랙 예약을 했다. (패키지가 아닌 개인이 할 경우 하루 50명으로 제한 되기 때문에 미리 예약 해야 한다) 


예약한 2015년 5월 부터 ~ 2016년 3월 엄마가 뉴질랜드에 도착하기 까지 무려 10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엄마는 잔뜩 기대에 부풀었을 것이고, 나는 생전 처음 엄마와 여행 하는 것이고 전부 다 내가 알아서 운전과 숙박 및 모든 일정을 해야 했기 때문에 기대와 함께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도 약간 들었던 것 같다.


표정에서 그다지 썩 즐거워보이지 않는다-_-


총 15일 정도 되는 일정 동안 엄마와 나는 많은 것들을 같이 했는데, 초반 부터 엄마의 마음을 상하게 한 일이 있었다. 

밀포드 트랙 가기 전 날 밤 짐을 싸는 와 중에 엄마는 쓸데 없는(내가 보기엔 쓸모 없었다) 작은 낚시 의자 등을 챙기길래 나는 "그 짐 다 못 들고 간다. 그거 엄마가 다 들고 메야 해서 최소한으로 짐을 싸도 10키로가 넘는다. 그거 빼라" 하며 엄마를 다그쳤다. 저거 빼라, 이거 필요 없다, 여기선 셀카봉 쓰기 좀 그렇다 등. 엄마는 이것저것 고려해서 가지고 온 건데 내가 다 빼라 그러니 엄마싶는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해버린 것 같았다. 



특히 엄마의 마음을 상하게 해버린 것은 밀포드 트랙 도착하고 나서 밀포드 트랙이 쓰여져 있는 표지판에서 사진을 찍을 때였다. 엄마는 이렇게도 찍고 저렇게도 찍고 싶어 하는데, 나는 다른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한 장만 찍으면 충분하다. 라고 하니 그게 못 내 서운했는지 그냥 앞장서서 훅 가버리셨다. 


그렇게 첫 날을 보내고 가슴 속에만 서로 불만을 내놓지 않고 있다가 밀포드 트랙의 가장 하이라이트 - 맥캐논 패스라고 하여 산을 높게 올라갔다가 하루만에 내려오는 3일 째 일정에서 요 며칠 동안 있었던 일을 털어 놓기 시작했다.


엄마는 딸 하나 믿고 사는데 여행보내준다고 엄청 기대해서 이것저것 다 챙겨와서 즐길 줄 알았는데 딸이 너무 박하게 구니 해외에서 말도 못하고 자신이 얼마나 답답했다며.


 엄마의 모자

미안했다. 잔뜩 기대한 엄마의 마음을 실망시켜드려서 너무 미안했다. 생각해보면 엄마는 속에 있는 마음에 대해 내색 잘 안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렇게 내색한 거 보면 어지간히 섭섭하셨나보다. 나는 정상 꼭대기가 다다르는 곳 즈음에서 엄마에게 "미안해"라고 말했다. 나도 눈물을 훔치고, 엄마도 땀인 척 하면서 눈물을 훔쳤다. 


밀포드 트랙에 가장 높은 지대의 산 꼭대기로 올라가는 중


그렇게 눈물을 터트리고 나니 뭔가 속이 시원해졌고 우리는 그렇게 산 정상에 올랐다. 내 마음처럼 잔뜩 낀 구름 때문에 모든 걸 다 볼 수는 없었지만 조그맣게 나마 구름과 구름 사이로 볼 수 있는 멋진 풍경에 감사했다. 그리고 나는 미안함 때문인지 엄마를 위해 사진을 엄청 찍어주었다.


산 정상 즈음
내리막 길


여행 중간 중간 꺼내놓은 엄마의 이야기는 나에게 엄마가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이 여행에 있어서 가장 값진 시간을 만든 4시간이였다. 대학교 등록금 200만원이 없을 때 돈이 없어서 친척들에게 부탁했지만 거절 당한 일,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왜 엄마가 힘들었는지 등..


포토제닉이로세


나는 엄마가 밀가루 면, 파스타 종류를 안 좋아하지만 빵 종류를 좋아한다는 것을 이제 알았고 군것질을 잘 안하는 나에 비해 군것질을 밥 시간 중간에 하는 걸 (뻥튀기, 쿠키 류) 좋아한다는 것, 꽃과 열매를 참 많이 좋아 한다는 것. 여행 내내 운전을 하면서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없는 나에게 오히려 그것이 엄마가 필요로 했던 진짜 시간이였음을 내가 입을 '닥치자' 깨닫게 된 사실이다. 엄마에게 항상 말하기만 했지 정작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 줄 시간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엄마와 함께


한국으로 엄마를 돌려보낼때 공항 앞에서 코끝이 찡했지만 그래도 꿋꿋한 모녀답게 서로 울지 않고 담백하게 헤어졌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고 냉장고에 채워놓은 엄마의 반찬들을 보니 마음이 싸해지면서 여행동안 더 살갑게 대해주지 못한 '몹쓸 자식'이였다는 것에 눈물과 후회가 남았다.


밀포드 트랙의 전체 트랙 길이 인 335마일 도착 표시


아직도 50대 중반인 엄마가 젊은 나를 따라 이렇게 힘든 트램핑을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에 너무나 고맙다. 이 글을 쓰다가 생각나서 전화 드렸는데 오늘은 덕유산에 등산 하러 왔단다. 하하하 



밀포드 트랙에 대한 정보는 이곳을 클릭


밀포드 트랙 준비하기 - http://korean.jinhee.net/83

꾸미지 않은 아름다운 자연, 밀포드 트랙 첫째날 - http://korean.jinhee.net/93

밀포드 트랙 둘째날 - Middle of pure nature - http://korean.jinhee.net/95

밀포드 트랙 셋째날 - 트랙의 클라이막스 - http://korean.jinhee.net/101

밀포드 트랙 4일째 - 마지막 날 - http://korean.jinhee.net/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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