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빚는 술
남편 제임스가 빚는 술 중에 석탄주가 있다.
맵쌀로 만든 술밑에 찹쌀로 다시 덧술 하며 담근다. ‘그 맛이 달고 향기로워 입에 머금고 차마 삼키기가 아깝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애석할 ‘석(惜)’에 삼킬 ‘탄(呑)’, 석탄주(惜呑酒)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름에 애주의 마음을 담고 있다.
순전히 이름 때문이었다. 이 술은 어떻게 만드는 것일까. 그가 술 빚는 과정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백미 두되 곱게 빻아 물 한말에 죽 쑤어 누룩가루 한 되와 함께 빚어 넣고 겨울은 이레, 봄가을은 닷새, 여름엔 사흘 만에 덧술 한다. 찹쌀 한말 무르게 쪄서 고루 빚어둔다. 스물 하루 동안 적정온도를 유지하며 들여다 보고 말도 건다. 술이 익어가며 내는 소리와 꿈틀거리는 모양이 존재를 증명한다.
손으로 만들고 그 결과물을 기다리는 술 빚는 일은, 외부의 환경 요인이 어떻게 작용할지 알 수 없다. 최적의 환경을 마련하고 때를 기다리는 것이 술을 빚는 묘미이다. 어느 한 과정도 소홀할 수 없다. 매번 비슷한 맛이 나는 듯 하나 유독 잘 담근 술이 있다.
연배 높은 손님은 손으로 빚는 술의 의미를 알고 그 맛을 음미한다. 맛이 깊고 진하고 향이 아름답다고 극찬한다. 석탄주를 거르고 숙성시키다 보면 청주와 탁주가 뚜렷이 구분된다. 맑은 청주를 조심히 덜어 맛을 보니 깔끔하고 향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누군가 석탄주 맛을 말하기를 사과 향기 같은 향취와 꿀물 같은 단맛, 혀끝에 착 달라붙는 감칠맛이 일품이라고 한다. 캐나다에서 빚은 한국 전통주라니 애석함이 깊어진다.
술맛을 보다 제임스에게 석탄주 이야기를 더 해달라고 졸랐다. 술 이름대로 차마 넘기기 아까운 그 향을 상상해 보면 ‘단맛’이 강한 술 일 것 같지만, 석탄주의 물 비율을 보면 단맛이 도드라지는 술은 아니다. 단맛과 신맛이 조화로워 그 맛을 입안에 머금고 싶다. 옛사람들이 석탄주라 부른 것은 이 조화로운 풍미를 가리킨다. 석탄주가 최고의 향을 내는 건 감미 하나가 아니라 산미와의 조화에서 온다는 선인의 고찰에 고개를 끄덕인다.
넘기기 애석해 삼키기 아까운 석탄주라 한참을 음미하고 싶어도 결국 목으로 넘겨야 그 맛을 온전히 느끼고 마셨다 할 수 있다. 입속에 맴도는 잔향과 부드러운 목넘김마저 느껴야 맛과 향의 완성을 안다고 할 수 있다. 살아가는 일이 사라지는 일이어서 빛나는 찰나도 흘러 보내야 삶이 된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도 기꺼워하며 넘긴다. 찬란한 내 젊음을 애석해하는 마음으로.
석탄주는 시간이 지날수록 맛이 변한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석탄주의 음주 시기와 맛이 다르다. 술을 거른 바로 직후에는 그 맛이 세고 달아 새침하다면, 시간이 갈수록 단맛이 빠지고 부드러워진다. 나는 단맛이 진한 바로 거른 석탄주를 좋아하고, 제임스는 며칠을 더 익혀 산미 깊은 석탄주를 좋아한다. 하루도 맛이 같지 않은 석탄주. 그 맛과 향을 당신에게도 전하고 싶어, 우리의 식탁으로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