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스토리텔링 바이블>을 읽고 처음으로 써보는 소설입니다.
소설 속 이야기는 모두 가상인물이자 허구입니다.
엉성하더라도,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그 새끼와 나는 고향 친구다.
요즘 고향 친구라는 말이 어색한 게 사실이지만, 그놈과 나의 관계 역시 어색하게도 고향 친구다.
학교를 1년 정도 같이 다녔지만 부모님들끼리 알고 지냈고 우리 역시 기억을 하기 시작하는 나이부터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학창 시절 사춘기가 왔을 때 그놈과 가끔 주고받는 문자는 내게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고 말할 수 있는 대나무 숲 같은 존재였고 그때 우리의 사이가 돈독해졌고, 동성인 데다 같은 나이로 인하여 사춘기에 느끼는 감정을 아무 여과 없이 함께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이 여과 없이 감정을 내비쳤던 건 주로 나였고 나와 같다는 그놈의 반응에 그 역시 그럴 거라고 짐작하는 정도였다.
그랬던 그놈과 자주 연락은 못했지만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만나 회포를 풀었고, 가끔 짧은 여행을 함께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몇 년 사이 그 녀석과 만나지 못했고 가끔 통화로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그놈의 상황을 짐작했다.
알고 보니 그 사이 그놈은 이혼을 했다고 했다.
아이들과 함께 사는 삶을 꿈꾸었기에 이혼만은 피하려고 했지만, 그놈은 아내와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했다.
결국 아내가 먼저 이혼을 신청했고, 그놈은 양육권을 양보할 수 없었지만 최종 판결로 혼자가 되었다. 혼자된 것에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그였지만 2주에 한 번씩 아이들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새로운 희망의 끈으로 잡으며 살고 있다 했다.
그러던 그놈이 못 본 지 오래되었다며 1박 2일 여행을 제안했다.
그놈의 반가운 제안에 나 역시 아내에게 스케줄을 확인하고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다는 사실과 가족을 벗어나 친구와 단둘이 여행할 생각을 하니 기분이 한껏 들떴고 전날 밤 잠을 설쳤지만, 다음날 아주 부지런히 일어나 그놈을 만나기 위해 여유 있게 기차를 탔다.
기차를 타고 한참 밖을 쳐다보며 들뜬 기분을 간신히 가라앉히며 차분해질 찰나.
진동으로 울리는 전화가 이어폰 음악을 멈추게 했다.
난 겨우 가라앉힌 차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상대는 그놈이었다.
"응, 나다. 어쩌냐 나 이제 일어났다. 미안하다. 얼른 갈게. 너 먼저 구경하고 있어. "
그놈에게 왜 늦잠을 잤냐고 묻고 싶었지만 곧 만날 사람이니 그 사정은 만나서 풀기로 하고 그 마음을 숨기고 대답했다.
"알겠어. 조심히 오고, 그럼 너는 2시간 정도 늦게 오겠네. 도착할 즘 전화 줘."
그놈과의 통화가 끝나고 이어폰에서는 멈추었던 노래가 다시 흘러나왔지만 난 그 노래가 들리지 않았다.
대신 그 새끼가 20대 때도 이런 적이 있었고, 그때의 목소리를 다시 듣는 기분이 들면서 내 표정은 어두워졌다.
결국 나는 그때의 기억은 머릿속으로 지우며 그렇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다시 아무 일 없는 듯 기차 밖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신, 처음 출발할 때와는 다른 어두운 얼굴로 말이다.
2시간 만에 기차에서 내린 후 처음 와본 이 낯선 도시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불안감과 함께 마주한 도시의 느낌은 나만 빼고 즐거워 보이기까지 했다.
차라리 아내랑 둘이 여행을 올걸 그랬나 와이프에게 미안한 감정까지 들었다.
2시간을 어디서 시간을 보내야 할까 고민하다 검색해 근처 유명한 공원을 가보기로 했다.
그 공원은 여름에 만개한 연꽃으로 장관을 이루는 곳이지만 가을에는 오래된 고목들이 아주 노련한 가을 색으로 변해 응축된 진액처럼 진한 가을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혼자 공원을 향해 가는 길 아무 연락이 없는 그놈에게 전화를 했다.
신호는 가지만 받지 않는다.
나의 불안감은 다시 꿈틀거렸고, 혼잣말로 또..라고 말하고 있었다.
얼마 후 도착한 공원은 정말 아름다운 가을빛을 다 모아 놓은 것처럼 너무 아름다웠다.
한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이곳에 오기 전까지 우울했던 마음은 순간 사라질 정도였다.
하지만 연인들, 친구들, 가족끼리 모여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인파 속 난 다시 불안했다.
이 불안함은 혹시나 하는 그놈의 안전이 걱정되는 불안이 아니라 내 여행이 망칠 것 같다는 불안감이었다.
그 새끼의 옛 행동들이 완벽히 기억났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사진을 찍고, 셀카로 내 모습도 담아보려고 했지만 카메라에 비친 내 얼굴 표정은 전혀 풍경과 어울리지 않았다.
카메라 속 어두운 내 얼굴을 보고 다시 그 새끼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한참 간 뒤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안하다. 나 지금 가고 있어."
나는 그 새끼의 말을 믿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 없었다.
그놈 역시 기차를 놓쳐 자차로 출발했다면 보통의 핸즈프리 목소리여야 했지만 그놈의 목소리는 아주 조용한 실내에서 전화를 받은 목소리였다.
나의 불안감이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이었기에 그놈에게 다짜고짜 쏘아붙였다.
"너 아직 출발 안 했지? 지금 이거 차에서 전화받는 목소리가 아닌데? 너 아직 출발 안 했어? 야 이 새끼야?"
내 쏘아붙임에 놀랐는지 그 새끼는 1초 정도 아무 말 안 하다 다시 대답했다.
"아니야. 가고 있어 기차역까지 30분 정도 걸린데, 지금 넌 어디야? 그쪽으로 갈게. 아마 비슷하겠지."
내가 괜한 예민 반응인가 싶어 그 새끼에게 진짜 출발한 게 맞냐고 확인받으며 내가 있는 곳을 알려줬다.
이후, 정말 그놈은 내가 있는 공원에 30분 정도 후에 도착했다.
멀리서 보이는 그놈은 여행 복장이 아니고 구두에 정장 차림이었다. 제비족 같은 새끼.
날 알아본 그 새끼는 날 향해 반가워하며 걸어왔지만 난 그 새끼만큼 반갑지 않았고 대신 무슨 일이냐고 가까이 온 그놈에게 묻고 있었다.
웃으며 아무 말 못 하는 그 새끼를 향해 난 추궁했다.
"너 지금 데이트하고 왔지? 나랑 여행할 복장이 아닌데? 왜 정장에 구두냐?"
나의 추궁에 뜨끔했는지 그 새끼는 웃으며 대답했다.
"이 구두 운동화만큼 편한 거야.... 너 돗자리 펴야겠다. 사실 여자 친구랑 역 근처 호텔에서 있다가 온 거야."
그 대답을 하며 웃는 그 새끼에게 막장 드라마처럼 시뻘건 김치가 있었으면 난 그 새끼에게 김치 싸대기를 날렸을 것이다.
나의 불안감은 완전 현실이 되었고, 내 눈은 삼국지 조조의 눈보다 매섭게 변하며 화가 머리끝까지 전달되는 기분이었다. 마치 온몸으로 번개를 맞은 것처럼 머리카락 아니 내 몸에 있는 털은 모두 화가 난 만큼 일어선 느낌.
"너, 왜 나랑 여행하자고 한 거야. 내가 왜 이 시간에 여기 있어야 하는 건데?"
그 새끼는 지금 내 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야. 연상 여자 친구가 갑자기 전날 이곳에서 만나자고 해서 금요일 밤에 퇴근하고 바로 왔어. 그리고 아침에 헤어지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된 거야. 미안해. 에이 그럴 수도 있지. 뭘 그래 우리 사이~화 풀어."
".... 너한테 내가 한두 번 당한 게 아닌데 내가 또 널 믿고 이런 바보짓을 했구나. 아 진짜 개 XX "
그 새끼는 실실 웃으며 내가 화나는 게 웃기다는 듯 실컷 웃고 있었다.
가증스러운 새끼..
그리고 난 매몰차게 공원 입구를 향해 걸어가야 할까.
아니면 사실대로 말한 그 새끼를 또 용서해 주고 아무렇지 않은 여행을 해야 할까.
이런 고민을 하는 사이 난 그 새끼가 뒤에서 내 이름을 불렀지만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 새끼에게 난 어떤 우정일까... 우리의 우정은 가벼운 연애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걸까.
그 새끼의 미안하다는 말은 정말 미안해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더 화가 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과 헤어져 혼자 일하는 일상이 우울함 그 자체라고 말했던 그 새끼는 어디 있는 거지..
26살 여름 강원도 바다로 여행하기로 한 날.
나에게 아주 편한 여행을 시켜주겠다며 우리 집 앞에 날 데리러 온 그 새끼를 보고 난 얼굴이 굳었다.
존재도 몰랐던 그 새끼의 썸녀와 함께 나타났고, 앞자리에 앉은 커플 뒤로 난 아무 말 없이 창밖만 보고 바다를 향해 갔던 여행이었다.
낯가림도 심하고 평소 낯선 사람과는 말도 잘 안 하는 내게 그 새끼는 쉼 없이 대답을 강요했고, 난 졸지에 눈치 없이 커플 여행에 낀 솔로가 되었다. 아주 최악의 여행이었고, 그날 강원도 바다는 생각나지도 않고 가증스럽게 여자 꼬시기 바쁜 앞자리에 앉아있던 그 새끼의 목소리와 뒤통수만 생각나는 여행이었다.
이 여행을 뒤로 그 새끼와 한동안 연락조차 안 했다가 알았던 세월이 더 오래기에 또 잊고 그 새끼를 만났다.
아마 29살 다른 고향 친구들과 총 4명이 가는 버스 여행이었다.
그 겨울 그 새끼와 그곳에서 찍은 사진이 없다.
왜냐면, 늦잠 자서 차를 놓친 줄 알았던 그놈은 알고 보니 여자 친구와 있어 우리 약속은 아예 당일 우리에게 늦잠이라는 핑계로 취소한 것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도 그놈의 여자 친구와 내가 일로 알게 된 관계가 되어 반가운 마음에 근황을 이야기하다 그때를 언급하는 그놈의 여자 친구 이야기에 전혀 모르고 지날 뻔한 그날의 여행 취소 이유가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 새끼에게 우정은 이런 걸까.
내가 그 새끼에게 바랬던 감정이란 것이 1차선 일방통행 길의 그런 방향성이었던 걸까.
곱씹어 봐도 나 스스로가 화가 나는 것을 보면 그 새끼와 내 길은 일방통행이었던 같다.
그냥 다음 여행부터는 자연스레 거절해야 맞는 것 같다.
아디오스. 내 마음속에서만 친구였던 개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