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동안 보관한
엄마의 추억 보따리

잊고 있었던 추억

by 보라보라

어느 날, 엄마가 내 방에서 뭔가를 한참 정리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엄마 뭐해?” “야, 너 온 김에 이거 갖고 가라.” 뭐길래? 하고 엄마가 옷장에서 한 뭉치 꺼내 준 보따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엄마! 이걸 아직도 갖고 있었어?! 난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엄마 너무 고마워.”


엄마가 내게 꺼내 준 물건은 나의 중학생 시절 가정 시간에 만든 실습작품이었다.

축소형 한복 세트와 치마, 반팔 셔츠였다. 그리고 어릴 적 잊고 있었던 첫 통장을 만들고 받은 우체국 필통도 들어 있었다.


중학생 때 처음으로 만든 작품은 치마였다. 수업 시간에 그저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실기 체험인 바느질로 옷을 만드는 수업이 너무 재미있었다. 마음은 즐거웠지만, 처음 해보는 바느질 수업이 어렵기도 했다. 예전에 할머니는 미싱으로 드르륵 한번 돌리면 뚝딱 옷이 다 만들어지는 것처럼 보였는데 나의 어설픈 솜씨로 재단하고 시침질하고 또 가지런히 박음질하는 게 생각보다 힘들었다. 또, 바늘이 이렇게 따가웠나 싶을 정도로 바늘에 찔릴 때마다 움찔움찔 몸서리치며 선인장을 만지는 기분이었다.


KakaoTalk_20200130_222521501_01.jpg 바느질 첫 작품 치마

결국 수업 시간에 다 완성하지 못해서 숙제로 갖고 온 미완성품을 엄마에게 보여주며 내가 이만큼 작업했고, 나름 잘한 것 같다고 어설픈 자랑을 하기도 했다. 엄마는 그 어설픈 바느질로 만들어진 미완성 작품을 보고 웃으시며 이제 시집가도 되겠다고 기를 살려줬다.


바느질 숙제하는 내 모습을 지켜보던 엄마는 결국 내 옆에 앉았다. 그리고는, 바늘 잡는 손 위치, 박음질할 때 요령, 매듭 마무리하는 것을 엄마가 알려줬고, 실습 숙제물의 마지막 피날레 작업은 너무 엉망이라 다시 뜯어내고, 엄마가 5분도 안 되는 순식간에 해결해 주었다.

확실히 엄마의 바느질로 마무리한 게 깔끔하니 좋았다.


이후에, 바느질 수업은 한복 한 벌과 셔츠 만들기였다. 처음 만들었던 치마보다 어려웠지만 조금 나아진 실력으로 전보다는 바늘에 찔리진 않고 쪼물쪼물해서 만들게 됐었다. 완성품을 보고 나 스스로도 너무 대견해서 엄마한테 자랑했고, 나중에 인형 옷으로 입힐 수 있을 것 같으니 버리지 말고 보관해 달라고 엄마에게 부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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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츠와 한복 세트




그 보따리를 받고 나서야 옛날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난 말만 뱉어놓고 잊고 있었는데 엄마는 이 물건을 보관하고 있었다니 너무 놀랍고 고마웠다.


엄마의 이런 추억 보관 이야기는 또 있다.


친정에 갔는데 첫째 조카가 목욕을 하고 나왔다. 그런데 감싸고 있는 수건이 낯이 익었다. 엄마한테 물어봤더니 “알아보네? 너 이거 7살 때 썼던 수건이잖아.” 헉! 내 어릴 적 사진에 보면 큰 주황색 수건을 마치 샤워가운처럼 입고 서 있는 사진이 있는데 그 수건이었다.

엄마는 자신의 첫아이를 감싸주었던 수건으로 첫 손주도 감싸주고 싶어서 오랫동안 보관했고, 거의 30년 만에 드디어 쓰게 된 것이다.

그 수건은 나와 내 조카를 관통하는 타임머신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와.. 엄마가 생각하는 그 깊이는 얼마나 깊은 걸까..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하셨을까..

엄마는 소중히 그 물건을 보관했고, 그 덕분에 내 기억과 어린 시절도 함께 회상할 수 있게 해 준 것에 놀라웠고, 고마웠다.


엄마가 보관해두었던 나의 실습 작품들과 주황색 수건은 내가 보관해야겠다. 엄마의 사랑과 추억, 그리고 내 추억이 듬뿍 담겨있는 물건이고, 언젠가 다시 꺼내 보고 엄마를 그리워할 때 날 위로해줄 추억의 물건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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