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작은 가을 낙엽과 함께 -2

사춘기 딸과 엄마

by 보라보라

얼마 전 4살 조카가 어린이집을 다녀온 후 “나 사춘기인 것 같아요”라고 하길래 너무 웃겨서 “너 사춘기가 뭔지 알아?”라고 묻자 “아니. 사춘기가 뭐예요?"하고 해맑은 얼굴로 물어보는 거다.

그래서 막내 이모인 동생이 “사춘기는 방에만 있고 말도 안 하고 선생님, 엄마, 아빠 말씀도 안 듣고 화가 나 있는 거야. 만약 사춘기가 오면 말해. 이모가 엉덩이를 엄청 세게 쳐서 사춘기가 달아나게 해 줄 테니깐.”라고 말하자. 조카는 웃으면서 “엉덩이를 때리면 사춘기가 도망가?”라고 물어서 엄청 웃었던 일이 있다.


나의 사춘기 때 막내 동생 같은 이모가 있었다면 내 엉덩이를 세게 쳐줬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사춘기 중학생 때가 생각났다.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교복을 맞추러 간 날 엄마는 중학생이 된 나를 뿌듯해하며 3년 동안 입을 옷은 넉넉하게 맞추는 게 좋다고 교복가게 사장님과 들뜬 목소리로 대화하셨다.

하지만 난 다 똑같은 교복을 입고 학교라는 공장에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난 두 분과 달리 세상 불만이 전부 내 것인 것처럼 심술 가득한 얼굴로 가게 안 거울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때는 그 교복이 참 싫었는데 지금은 교복 입은 학생들을 보면 다들 싱그럽고 생기발랄해 보여서 그때 마음과 지금의 마음이 참 다르구나 느낀다.

반올림사진.jpg


중학교 첫 등교 날 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어떤 애들을 만나고, 어떤 선생님이 내 담임일까, 내 학교에는 문제아 선배가 없진 않겠지.. 그들을 만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별별 생각을 다 하며 복잡한 마음만 가득했다.


하지만 엄마는 중학교 첫 등교 날을 기념하자며 분주하게 카메라를 챙겨서 마당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난 짜증 섞인 목소리로 “계속 입을 옷인데 뭐 하러 찍어? 휴.. 빨리 찍어! 나 늦어!”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엄마는 마냥 즐거운 표정으로 “웃어~ 딸! 김치~~”라고 하며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고 학교 가는 길 엄마는 어떻게 매번 기분이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다 친구를 만나 첫 등굣길이 외롭지 않았고, 긴장감이 많이 풀렸다.


이 이야기를 쓰다 앨범을 찾아보니, 정말 그날의 사진이 있었다. 중학교 교복 입고 마당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 한참 웃었다. 사진 속 내 모습은 귀밑 3센티를 철저하게 지킨 똑 단발머리, 무표정한 흰 얼굴, 별 포즈 없이 우두커니 교복을 입고 서 있으며, 검정 구두에 흰 양말을 신고 있었다.


엄마에게 이 사진을 보여주며, “엄마 이때 왜 사진 찍었어? 애 좀 봐 표정도 없어~”

“너의 첫 교복이니깐 기념으로 찍으면 좋겠다 생각했지. 또 네가 첫 등교라 그런지 너무 긴장한 얼굴이 보여서, 엄마가 풀어 주려고 사진 찍자 했지. 이때도 짜증 엄청 부렸지..”

내가 엄마여도 그렇게 아침부터 짜증 내고 있는 딸에게 사진 찍자고 할 수 있었을까? 나라면 같이 짜증 내면서 뭉그적거리지 말고 빨리 학교 가라고 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우리 엄마의 자식 사랑과 인내심은 정말 대단하다.



중학생이 된 후 난 친구들에 비해 교복이 어울리지 않고, 못생겨 보이면서 친구들의 외모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울을 들여다보는 시간도 늘어나고 그만큼 한숨과 짜증이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또, 이런 외모 불평이 늘면서부터 나의 성격은 무척 예민해졌고, 초등학교 동창 남자애들하고는 아는 척도 안 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교복 입은 날 보고 비웃는 것만 같았고, 심지어 나의 풋사랑 A 군과 마주쳐도 아는 척하지 않았다.


특히, 매일 아침 현관에 있는 전신 거울 앞에서 엄마에게 짜증을 냈다.

“엄마 나 왜 이렇게 못생겼어? 식구들 다 있는 쌍꺼풀 왜 나만 없어? 이거 다 엄마 탓이야. 왜 난 친할머니만 닮은 거야? 난 왜 이렇게 무다리야? 엄마의 짧은 종아리를 닮은 것 같아. 엄마는 왜 나 못난 것만 줬어?”등등 바쁘게 등교해도 모자랄 판에 난 아주 사소한 거 하나하나 엄마의 심기를 건드리는 말만 쏟아 냈다.

불만-Pixabay로부터 입수된 Peggy und Marco Lachmann-Anke님의 이미지.jpg 출처 Pixabay

그럼 엄마는 아무렇지 않은 척 “야, 밖에 나가면 못생긴 애들 천지다. 너는 명함도 못 내밀어! 쌍꺼풀은 아빠도 스무 살에 생긴 거야. 너도 그럴 거니깐 부지런히 학교 가세요. 엄마는 종아리는 짧아도 날씬했다. 넌 너무 안 움직이니깐 무다리가 된 거지 내 탓 아니야. 네가 친할머니를 닮은 것도 내 탓 아니야. 그 유전자는 아빠가 준거야. 아빠 탓해. 교복 입은 네가 안 예쁘냐고 밖에 나가서 물어봐라. 네 나이에 뭘 입어도 예쁘지. 얼른 학교가.”라고 항상 나의 날이 선 물음에도 덤덤히 답해줬다.


나는 매번 엄마의 대답을 듣고 문을 확 열고 다녀오겠습니다. 인사하고 학교에 가버렸다.

세게 연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힐 때 매번 엄마 마음은 어땠을까.. 딸이 아니라 원수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감정 기복도 심하고 괜히 화가 나는 날 추스르기도 바빴기 때문이었다.




감기처럼 갑자기 나에게 찾아와 언제 그랬냐는 듯 날 떠난 사춘기. 하지만 그사이 난 엄마에게 얼마나 많은 뾰족한 말을 뱉었고, 엄마는 얼마나 많은 상처 받았을까 생각하니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만 든다.

사소한 것에 화내도 웃으며 말해주고, 짜증 부려도 농담으로 받아주고, 못났다고 투정 부리면 나보다 못난 사람이 더 많다고 내편 들어주고 했던 엄마다. 이 넓은 마음이 나의 날카롭기만 했던 사춘기를 조금씩 무뎌지게 만들어 주신 건 아닐까 생각된다.


엄마와딸마주보고웃음-Pixabay로부터 입수된 Jackie Ramirez님의 이미지.jpg 출처 Pixabay


이후 어린 나는 조금 철이 들었는지 엄마에게 짜증만 부리지는 않았다. 예전보다는 조용해졌지만 다시 수다스러운 딸로 돌아왔다. 기복 심하고 자기 비하가 강했던 딱딱한 껍질을 깨고 나온 새가 된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부글거리던 뜨거운 용암이 결국 다 분출해버리고 휴화산이 된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사춘기 이후 난 내성적인 면이 좀 더 강해졌지만 동시에 날카로움은 줄어들었다. 엄마의 인내심과 배려 덕분에 나 역시 화가 나도 즉시 반응하지 않고, 한 템포 쉬고 왜 화가 나는 상황인지 확인하고 그에 맞게 대처하려는 습관이 생겼다. 또, 엄마와 매번 했던 감정싸움에서 밀려서 그런지 이젠 감정싸움에서 지는 게 나쁜 것도 아니고, 괜한 감정 소비는 무시하게 되었고, 억울한 감정싸움이 아니면 크게 요동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지금도 날카로울 때도 있고, 욱할 때도 있지만, 요즘엔 많이 둥글둥글 해진 것이 보인다고 한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며 정말 순해졌다고 말씀하시지만, 다 엄마 덕이 아니었을까..


뭐든 덤덤히 혹은 묵묵히 바라봐 주시고 응원해주시던 그 포용력을 나는 따라갈 수 있을까?

나도 엄마처럼 상대방을 너그럽게 바라보고 차분하게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