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딸과 엄마
가을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단어는 낙엽이다. 예쁘게 물든 잎사귀도 좋지만 바닥에 떨어진 낙엽은 언제나 내게 6학년 가을을 생각나게 한다.
부천으로 올라온 초3학년 2학기 새 학교가 너무 크고 낯설어 난 학기 내내 학교 다니지 않겠다고 시위를 했지만 내 뜻은 이뤄질 수 없었다. 이때 엄마는 내게 옆 동네 사는 외사촌 형제와 함께 등교하도록 했다. 덕분에 낯설었던 학교에도 날 아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조금 든든하긴 했었다.
4학년부터는 학교에 적응하면서 임원 활동을 시작했고, 다시 활발해진 성격은 반 대항전 고무줄놀이를 할 적에 아주 빛을 뿜어냈다.
5-6학년 때는 임원&방송부 활동하면서 매우 즐거운 초등 학교생활을 했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남자 친구 여자 친구 가르기 시작했고, 남자 친구 중에서도 내 마음에 쏙 드는 친구가 생겼고, 그 친구는 나의 풋사랑이자 짝사랑이기도 했다.
이때 난 엄마에게만은 모두 털어놓았다. A군이 왜 좋은지, 짝꿍 뽑기에서 A군이 내 이름표를 뽑아서 기분이 좋다. 오늘은 A군이 내게 더 친절하게 대해줬다. 등 내 풋사랑과의 에피소드 하나하나 엄마와 모든 것을 공유했다.
하지만 6학년 가을이 되면서부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화기애애한 들뜬 분위기보다 조용하고 차분한 것이 좋아졌고, 친구들과 날마다 떠들던 수다도 재미 없어지고, 다 이야기하던 내 속마음도 엄마에게 한두 개쯤은 감추고 싶다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특히 하굣길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집으로 돌아갈 때면 기분이 너무 좋았다. 들뜬 기분이 아니라 차분하면서 나만의 생각으로만 온전히 세상을 느낄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떨어진 낙엽마다 모양도 제각각이었고, 낙엽을 밟을 때 나는 소리 역시 다 달랐다. 어떤 녀석은 바삭한 과자처럼 경쾌했고, 어떤 녀석은 밟히자마자 연기처럼 사라지는 듯 짧은 부서지는 소리를 냈고, 어떤 녀석은 아직 덜 자랐는데 벌써 나무에서 떨어져 억울하다는 듯 짓눌리는 소리를 내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너무 짧게 느껴져 난 가을 내내 집 앞 공원도 들렸다. 공원 산책로에 떨어진 낙엽들의 소리도 한 번씩 감상하고 나만의 사색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 난 하교 후 집으로 뛰어 들어와서 “다녀왔습니다. 오늘 간식은 뭐야?”소리치거나 아니면 어린 동생들을 보면서 반가워했다. 하지만 낙엽 소리가 좋아진 때부터는 나는 차분히 “다녀왔습니다.” 인사하고 곧장 내 방으로 들어가곤 했다. 또 동생들이 내 방에서 놀고 있을 때는 어서 거실로 나가라고 하면서 나만의 공간에 나만 있길 원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수다스러운 딸이 말수가 줄었고, 매일 A 군과의 일을 자랑처럼 말하던 것도 물어봐야 겨우 말하는 정도였다. 귀가시간이 조금씩 늦어지는 내 모습을 보고 직감했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는 내게 “왜 그래? 동생도 네 방에서 놀 수 있지 괜히 왜!?” 같은 잔소리는 전혀 안 하셨다. 대신 “오늘도 학교에서 재미있었어? 간식해 놨어. 얼른 나와서 동생들이랑 먹어~” 또는 “오늘 월요일 조회 날이라 방송부 활동했겠네. 수고했어.”라고 따뜻한 말씀만 해주셨다. 엄마의 따뜻한 말에 차분하지만 찬바람 불던 내 마음을 한 겹씩 녹여주었다.
이런 감성 충만한 가을을 보내고 맞이한 초등학교 졸업식은 정말 싫었다. 정든 학교를 떠나야만 하고, 친구들과 헤어짐이 싫었고, 낙엽처럼 나의 초등학생 시절도 사라진다는 생각에 더 싫었고, 인생은 뭐길래, 난 꼭 이런 헤어짐을 겪어야만 하는가 등 별별 생각으로 졸업식을 보냈다.
친척들까지 다 모인 나의 졸업식 날 마무리는 자장면으로 했다. 다들 졸업과 중학생이 됨을 축하하는 즐거운 분위기였지만, 난 그 분위기에 함께 들뜨지 않았다.
졸업식 날 엄마는 의기소침해 있는 내게 “생판 모르는 학교에 전학 와서 학교 안 간다고 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졸업까지 했네. 잘했어 딸. 이번에 중학교는 친한 친구들이랑 같이 가게 되었잖아. 또 같은 반 되면 좋겠지만, 그래도 아는 친구들이 있다는 게 어디야. 너무 겁내지 말자. 잘할 거야.”라고 하며 웃어주셨다.
‘맞아 그렇게 다니기 싫었던 이 학교도 잘 적응하고 졸업했어. 너무 슬퍼하지 말자.’라는 생각이 들자 맛없게만 느껴졌던 자장면이 맛있었다.
이렇게 난 낙엽의 느낌처럼 쓸쓸하고 고독하면서 차분한 사춘기를 시작했다.
엄마는 생각보다 너무 빨리 와버린 큰딸의 사춘기가 겁났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오히려 더 따뜻한 말을 해줘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만약 내 조카나 자식에게 사춘기가 온다면 따뜻하게 대해줘야지라는 생각은 하지만, 그건 사실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탱탱 볼처럼 감정 기복도 심해지고, 말수도 적어지다 갑자기 날카롭게 행동하는 자식에게 무한정 좋은 말만 해줄 수 있었을까..
** 사춘기 이야기는 후속 편으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