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 빵 덕분에 알게된 의미
어느 날 친구와 TV를 보던 때였다. 드라마 속에선 설 명절날 한복을 차려입고 가족이 모여있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친구에게 물었다.
“설날 받은 세뱃돈은 어떻게 했어?”라고 물어보니 엄마한테 맡기고 난 후, 기억 속에서 잊어버렸다는 거다. 다른 주변 친구나 지인들도 마찬가지인 경우가 흔했다. 그리곤 잊혀진 돈의 행방은 그냥 잃어버린 돈이거나 아님 대충 엄마가 유용하게 썼겠지 하며 넘어간다.
그때 우리가 받은 용돈은 새해 첫 용돈이었는데.. 그렇게 무시해도 될까?
내가 돈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할머니가 준 100원으로 집 앞 가게에 가서 물건을 처음 샀을 때다. 평소에 어른들이 물건을 살 때 돈을 내는 모습을 보긴 했지만 처음으로 그 시절 내가 제일 좋아했던 보름달 빵을 산 것이었다.
간식을 먹고 싶다는 내게 엄마는 직접 사 오라고 시켰고, 내가 직접 해보니 이 동전이 이렇게 귀한 거구나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가 아마도 5-6살이었으니, 난 그때부터 돈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친가에서 나는 손녀로서 첫째다. <첫>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새롭고, 설레고, 어리숙한, 서툴거나, 귀엽거나 대견한, 대단한, 이런 생각들이 떠오른다. 그래서 그런지 어른들의 사랑을 분에 넘치게 많이 받았다.
유독 명절이나 할아버지 할머니 생신날 그리고 내 생일날은 언제나 두둑한 용돈을 받았다. 돈을 몰랐을 때는 그 종이가 뭐가 좋다고 자꾸 주는 거야 생각했지만 돈의 의미를 알게 된 후, 용돈을 많이 받는 날은 주머니가 있는 옷이나 작은 손가방이 돈을 보관하는데 더 편하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친척 어른들도 많고, 아이들도 많아 정신없이 시끌벅적했던 집안이 조용해지면 난 엄마에게 갔다. 마치 용돈 정산을 하듯, 엄마에게 이만큼이나 받았어라는 행복한 표정으로 엄마에게 용돈 뭉치를 건네줬다. 그럼 엄마는 나와 함께 돈을 다 세어보고 총얼마를 받았다고 말해줬고, 네가 예뻐서 받은 용돈이니 어른들한테 인사도 잘하고 심부름도 더 잘해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하지만 난 그 용돈을 어떻게 보관할지가 더 궁금했다.
“엄마, 세뱃돈은 어떻게 보관할 거야?”
“엄마가 보관해도 되는데, 통장에 모아도 돼. 내일 엄마랑 통장 만들러 갈래?”
“통장? 돈을 통장에 보관하는 거야?”
“응, 돈을 잃어버릴 수도 있고, 이 돈을 그대로 보관하는 건 어려우니깐 통장을 만들면 은행에서 돈을 대신 보관해주고 모아주는 거야.”
시골집에서 1분 거리에 우체국이 있었다. 설날 연휴가 끝나고 엄마는 나와 함께 우체국으로 가서 내 이름으로 된 통장을 만들어줬다. 가끔 우표 사러 간 적은 있지만 통장을 만들기 위해 우체국을 방문한 건 처음이었다. 시골 우체국이라 규모는 작았고, 직원은 4명 정도였다. 그때 엄마는 우체국 직원들에게 애 혼자 은행에 오면 잘 부탁한다고 하면서 직원들에게 인사도 시켜줬다. 또, 엄마는 내게 이제부터 받은 용돈이랑 통장을 갖고 우체국으로 오면 삼촌, 이모가 통장에 넣어준다고 알려주셨다.
처음으로 내 이름으로 된 종이에 세뱃돈이 숫자로 적혀있는 통장을 받으니 기분이 무척 좋았다. 세상에서 제일 부자가 된 뿌듯한 마음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다.
통장이 생긴 후 난 용돈을 받으면 엄마한테 확인받고 우체국으로 가서 저금을 하기 시작했다. 또, 우체국에 가면 직원들이 다들 날 알아봐 주셨고, 저금하러 온 내가 기특하다고 사탕도 주셨기 때문에 난 우체국 가는 날은 무조건 기분이 좋았다.
부천으로 이사가 결정된 때 부모님은 큰 결심을 하고 부천으로 올라간다는 것을 어린 나도 눈치로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내 생애 처음으로 내 통장에 모은 돈으로 엄마에게 선물을 사주고 싶었다.
대략 3년 정도 저금한 통장을 엄마한테 보여주면서
“엄마, 부천 가면 내가 선물 사줄게! 나 용돈 많이 모았어.”
“더 많이 모아야지, 엄마 선물 살 수 있는데?”
“더 모아야 해? 근데 엄마, 이제 여기 우체국 못 오는데 이 통장에 어떻게 더 돈을 모아?”
엄마는 부천에 가서도 이 통장으로 저금하면 된다고 하셨다.
하지만 난 내가 모은 용돈으로 엄마에게 이사 가서 필요한 물건을 사 드리고 싶었다.
부천에 온 후에도 나를 비롯해 동생들까지 세뱃돈이나 어른들에게 받은 용돈은 엄마가 차곡차곡 통장에 저금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우리들에게 “너희가 모은 돈으로 방 3칸 집으로 옮기는데 보탰다”라고 하시며 고맙다고 했다. 내가 직접 고른 선물은 아니지만 난 그때 내가 모은 용돈으로 엄마에게 선물 겸 보탬이 되었다는 게 너무 좋았다. 나 스스로도 매우 기분이 좋았지만 엄마가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엄마가 가르쳐준 돈의 개념, 저축, 소비를 배워서 그랬는지 취업 후에는 월급의 일부를 무조건 저축했고, 또 틈나는 대로 소액 적금 통장을 만들었다. 그 돈으로 일 년에 한 번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도 했고, 동생들 대학 첫 학비를 내가 내주기도 하고, 또 결혼할 때는 오직 내가 모은 자금으로 결혼을 했다.
이게 다 엄마가 만들어준 나의 첫 통장 덕분이다. 어릴 적 배움이 성인이 돼서도 영향을 주는 것은 도덕, 예의, 그리고 경제 개념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