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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미 Sep 22. 2019

소중한 나의 여행친구

아무 할 일도 없이 시엠립에 10일을 있는다고 말하면 다들 놀란다. 도대체 씨엠립에 할게 뭐가 있냐는 것이다. 나는 씨엠립의 호텔들이 다들 가격대비 시설이 좋다고 들은 데다가, 우연히 구한 항공권이 아주 싸서 별 생각없이 온건데. 사실 지금은 그 항공권이 별로 싼건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동안 비가 엄청나게 많이 왔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의 ‘수영장에서 하얌없이 뒹굴기’ 계획에 차질이 많다. 도착한 다음날엔 괜찮았지만, 그 다음날부터 하루종일 하늘에는 구름이 끼어있고, 점심시간쯤 한차례 소나기가 내리고, 저녁시간 후에는 밤새도록 비가 온다.이것이 바로 니가 얕보던 캄보디아의 우기지! 하는 것 같다.


수영하러 왔는데 이런 낭패가 있나. 근데 생각해 보니, 내가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이렇게 수영장을 챙겼던가? 원래는 수영장 따위는 숙소에 딸린 옵션에 불과하고, 그 시간에 더 많은 시장과 관광지와 음식점을 돌아다니는게 좋았다. 그런데 이제는 수영장이 없는 숙소는 아예 갈 생각이 없다. 다행히 내가 주로 다니는 동남아에서는 2~3만원이면 수영장 딸린 숙소에 묵을 수 있다. (여기 씨엠립에는 도미토리가 있는 게스트하우스에도 수영장이 있다.)설이고 뭐고 수영장 하나를 찾아 선택한 숙소에서 어제 저녁에도 수영하고 오늘도 조식을 먹자마자 일찌감치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이것은 다 내 친구 때문이다.

오늘은 간만에 화창한 날씨라 하루종일 수영장 옆에 붙어 있기로 했다. 수영장 사진을 찍으니, 바로 이 사진을 보내야 할 친구가 떠오른다. 이 친구는 보는 것마다 놀라워하고, 먹는 것 마다 감탄한다.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새벽이나 저녁에 알뜰히 수영장을 이용하며 즐거워한다. 수년간의 여행이 결국 일이 되어버린 후 매사가 시큰둥해질 때 즈음 이 친구 덕분에 또다시 여행이 즐거워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어제 야시장에서 득템한 원피스 두개도 이 친구 덕분이다. 괜히 바가지 쓰는게 싫어서 쇼핑을 잘 하지 않았는데, 한동안 친구를 따라다니면서 쇼핑이 재미있어졌다.


동남아의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블링블링한 원피스를 입으면 감탄과 칭찬을 마지않는 친구. 함께 비키니를 사며 다음번 여행을 꿈꾸는 친구. 그 친구와 함께 오지 못한 여행에서 다음번 그 친구와의 여행을 계획해 본다. 함께 있으면 가끔 티격태격하긴 하지만 돌아오면 좋은 기억밖에 없는 여행 친구를 두는 것은 정말 행운이다. 그래서 사진 찍는 것을 귀찮아하는 나도 괜히 수영장이나 음식사진을 친구에게 보내본다. 다음번에는 꼭 함께 하자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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