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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미 Sep 30. 2019

여행의 의미

이곳이 아닌 그곳에서

여행에서 돌아오면 서먹했던 친구를 대하기가 조금은 나아질것이라 생각했다. 여행을 떠나면 아마도 이 모든것은 사소해 보일것이라고. 그렇지만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다가도 이따금씩 친구생각을 떠올릴때 결국은 내가 화를 내는게 얼마나 당연한 일인지, 친구가 얼마나 나에게 잘못했는지를 생각하고야 말았다. 도대체가 이놈의 생각은 아무리 바꾸려 해도 쉽게 바뀌지가 않는다.


아침에 잠이 깬 뒤에도 침대에서 한동안 뒹굴며 한국에서의 우울한 일들을 생각했다. 결국 조식시간이 끝날무렵에서야 일어나 방을 나섰다. 영어가 좀 어눌하지만 열심인, 그러나 항상 좀 성가신 느낌이 드는 아이가 또 말을 건다. 아니, 왜 밥먹으러 가는 사람을 굳이 불러서 어제 불편하진 않았는지를 장황하게 묻는걸까? 그래도 착한 아이고, 한국인이라니까 좋아하는 귀여운 아이다. 배가 고프고 커피가 땡기고 아침부터 저혈압이긴 하지만 잘해줘야지. 굳이 물어보는것도 신경써 주는거겠지. 다 괜찮은데 괜히 안물어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랬더니 호텔 리뷰를 써 달랜다. 내가 이미 구글지도에 쓴것은 알고 있지만 트립어드바이저에도 리뷰를 써달라고. 트립어드바이저에 리뷰를 써주면 자기가 체크아웃 시간을 연장시켜주겠다고.


아, 진짜.


무료 체크아웃 연장은 이 동네 기본이고 내 예약 옵션에도 이미 들어가 있는데. 그리고 내가 여기서 7박을 묵었는데, 리뷰 하나 써달라고 레이트 체크아웃을 선심쓰듯이 말하다니. 쪼끄만게 진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일단 알았다고 말하고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내내 그 생각에 밥도 제대로 먹는둥이었다. 방으로 돌아와 리셉션에 전화를 해서 체크아웃 연장사항을 문의했더니 가능하단다. 굳이 다시 확인을 하고는, 굳이 트립어드바이저에 접속해 리뷰를 달았다. 직원의 리뷰강요 때문에 원래 만점 주려다가 별 하나 뺀다고.


그러고는 방에서 나왔다. 아이가 이미 상급자와 함께 리뷰를 읽은 모양이다. 나를 보더니 시무룩한 표정으로 다가와서 미리 전화하면 우리가 짐을 가지러 올라갔을거라는 얘기를 한다. 무거운 짐을 들고 있는 나를 가로막고 서서는 또 이 무슨 눈치없는 일인지. 짐을 맡기고 나서는데 또 화가 나서 무서운 표정으로 거리를 걸었다. 그런데 지금 쓰다보니 웃기는게, 내가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도대체 모르겠다. 그냥 누군가가 내 맘대로 하지 않는게 이렇게 화를 낼 일인가? 리뷰를 강요했던거야 화날일이라 치고, 이게 하루종일 이렇게 화낼일인가? 그러나 결국 나는 하루종일 그 아이만 생각하다가 한국에 돌아왔다.


오늘 한국에 돌아와 친구와 점심을 먹었다. 여행을 가기 전처럼 그렇게 어색하거나 말을 하기 힘들지 않았다. 밥을 먹다가 문득, 이 친구를 대하는게 여전히 껄끄럽긴 하지만 이전의 그 지나친 분노의 감정은  가라앉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친구도 심하게 화가 난 나때문에 마음 고생이 많았을 것 같았다. 친구에게 '미안해, 괜히 나때문에 고생이 많았다.' 고 했더니 아니라고 말했다. 자기도 미안하다고.


여전히 친구와의 일들을 생각하면 답답해지고 화가 난다. 그러나 아무리 나의 감정이 정당하다 해도 그렇게 까지 일방적으로 화낼 일은 아니었다. 화를 조금만 냈어야했다. 왜 내가 기분이 나쁜지 알려주고 상대방이 이해할 시간을 , 혹은 이해할 여유를 주었어야 했다. 친구 앞에서 화를내진 않았지만 나 혼자라도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것은 정당하지 못했다.


그래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하길 잘했다.


처음 여행을 갔을때는 모든것이 놀랍고 새로웠다. 그저 익숙하게 살아가던 나 자신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고, 많은 것을 달리 볼 수 있게 되었다. 요즘은 여행마저도 일상화 되어간다. 그래도 이곳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간다는 느낌은 아직 살아있다. 그곳에서 이곳을 생각하면 작은 구덩이 속에 갇혀 맴맴 돌며 같은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제자리 걸음을 하는 나를 내려다 보는 느낌이다. 그러다 보면 조금이나마 내 생각의 구덩이를 벗어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씨엠립을 떠나 한국에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그 열심이지만 의욕만 높던 아이에게 좀더 타이르거나 이유를 알려줄 수 있었을텐데, 그렇게 화가 낼 일은 아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괜히 나때문에 의욕이 꺽일까봐 염려되어, 이미 쓴 호텔 리뷰를 지우고 새로 썻다. 나의 염려가 그 아이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


여행을 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여행할때마다 조금 더 나를 되돌아보게 되고, 더 좋은 사람이 되고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요즘 내겐 여행이 그런 의미다. 그래서 이번 여행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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