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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미 Sep 24. 2019

소유냐 존재냐

아침부터 문자가 왔다. 내가 돌아갈 날에 맞춰 주문해 놓은 냉동 농어스테이크가 오늘 도착한다는 것이다. 배송시스템이 발달했다지만 누구나 빨리 도착하는걸 좋아하는 건 아닌데. 여행 나오기 전에 냉장고를 비우고 나왔기 때문에 집에 가서 해 먹을 식자재를 사놓는다는게 그만 이런 사태로 이어졌다. 다행히 집에 하우스메이트가 있으니 받아달라고 하면 된다. 그렇지만 나는 왜 이 멀리까지 와서 또 쓸데없이 인터넷 쇼핑을 한건지. 집 앞에 시장도 있는데 말이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라는 책을 읽었다. 이런 어려운 책은 역시 와이파이가 안되는 비행기안에서 잘 읽힌다. 읽기 전에 제목만 보고서는, 나는 딱히 명품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옷에 관심이 있는것도 아니니, 역시 소유보다는 존재하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 물건을 소유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여행을 하는것이나 무작정 많은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것, 더 많은 지식을 쌓으려는 것도 소유의 욕망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존재의 공허함을 채우지 못해 외부의 것들을 자꾸 쌓아두려 한다는 것이다. 책을 읽어보면 나는 딱 소유형 인간이다. 열심히 존재형 인간이 되려고 발버둥치고 있지만.


생각해 보니 최근의 여행은 나의 허무와 공허를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소비된 것이 사실이다. 요즘 부쩍 왜 사는지 알 수가 없어서 수많은 소설을 읽고 영화도 보았다. 기분이 좋아진다길래 헬스장도 다니고 맛있는것도 먹었다. 이곳에 온 것도 ‘우울증엔 뇌과학’ 이라는 책에서 추천한 방법에 이곳이 딱이었기 때문이다. 저렴한 비용으로 일광욕과 수영장, 마사지를 매일매일 즐기고나니 세상 걱정거리가 없어졌다. 동남아는 역시 최고다.     


일시적인 치유에 불과하다지만, 그래도 이런 소비를 함으로써 나의 감정과 사고가 좋은 쪽으로 바뀌고 그로 인해 나 자신이 조금더 힘을 낼 수 있다면 이것 역시 존재의 수단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마음이 잘 맞지 않는 친구와 수다를 떠는 것도 일종의 인간관계를 소비하는 것이지만 서로를 이기적으로 소모하거나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로인해 서로를 조금이라도 더 알고 아낄 수 있는 관계가 될 수 있다면 우리는 함께 존재를 표현하는 관계가 될 수 있다. 무엇이든 조금이라도 진지하고 사려깊게만 소비한다면...     


요즘 부쩍 무기력해진 친구의 여행 제의에 망설이던 와중에 든 생각이다. 최근 만나는 것이 더 부담스러워진 이 친구와의 관계가 고민되던 차였다. 만나면 즐겁지 않은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그의 공허함을 달래기위해 소모되고 있는 느낌이 든다. 늘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종종 그의 무심한 말에 감정이 다치곤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대로 관계를 그만둔다면 나도 내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친구를 그저 소비한 것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나도 그 친구의 공허한 내면을 이해하려고, 응원하려고 더 노력해 봐야 하지 않을까? 아마 나도 친구를 나도 모르게 소모한 적이 있지 않을까? 오랜시간 각자 힘겹게 살아오면서도 여전히 함께한 인연을 이렇게 그저 흘려보내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된 결정이다. 이제껏 싸우지 않고 서로 다치지 않으려고 그저 소비해 온 우리의 관계를 좀더 아끼고 발전시키려고 애써보고 싶다.


그러니까 어제 럭키몰에서 오로지 소유의 욕망으로 사버린 ‘폰즈 톤업크림’도 친구에게 선물함으로써 나의 존재를 표현하는 것으로 긍정적으로 바꿔 보련다. 우리의 우정을 다시한번 되돌아보기 위해 산 것이라고 우기면.... 친구가 좋아할까? 음, 이건 아닌것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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