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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미 Mar 12. 2020

세상의 중심은 내가 아니다

친구가 암에 걸렸다. 지인이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는 것은 이번이 두번째다. 첫번째는 아직 내가 대학생인 시절이었다.  벌써 10년도 더 지났건만 실제로 누군가의 암 소식을 듣던 그날의 장면은 아직도 머리속에 생생하다. 갑상선 암의 생존률과 치료법 운운 하는 것들을 책에서 공부할때와는 완전히 다른 현실감이 닥쳐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힘들다기 보다 오히려 담담했다. 2년전 겪은 엄마의 죽음으로 인해 삶과 죽음에 대해서 너무 많이 생각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 일이 아니라서 일까. 나의 공감능력이 고작 이것 뿐인걸까. 


무척 좋아하는 친구지만 근 10년간 만나지도 연락하지도 않았던 터라, 최근의 만남은 늘 어딘가 어색하고 불편했다. 내가 아는 친구는 이미 10년도 이전의 생기 발랄하던, 혹은 제멋대로인, 그렇지만 늘 자유롭고 여유로워보여서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던 그녀였다. 지금 우여곡절 끝에 만난 내 눈앞의 그녀는 지쳐있고 힘들어 보였다. 아니면 내가 지쳐있고 힘들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녀를 더 그렇게 본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젊음과 에너지를 소진하며 버티고 살아온 그녀와의 재회는 어딘가 힘들었다. 나를 무척이나 필요로 했지만 나 역시 그녀에게 나눠 줄 에너지가 없었다. 한동안 만남과 싸움 이별과 화해를 반복한뒤 이제서야 조금씩 편해지고 다시 친해지던 찰나였다. 그런데 암이라니? 


일단 만나. 

아니, 너 바쁜데 천천히 만나도 되는데. 

나 하나도 안 바빠. 맨날 놀아.

그럼 이따 점심 먹자. 


웃긴게 그런 대화를 하고, 전화를 끊고는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역시나 '나' 였다. 왜 자꾸 '나한테' 이런 일들이 닥치는 걸까. 왜 내가 평온하도록 삶은 내버려 두지 않는걸까? 왜 이 친구는 그동안 연락도 없더니 이제와 연락을 해 놓고는 '내'게 이런 짐을 떠안기는 걸까. 이 친구가 이렇게 막막하고 힘든 시기에 이런 이기적인 생각이나 하다니 '나'는 제정신인가? '나'는 사이코 패스인가? 


친구의 일에 세상이 무너질듯 아프고 힘들지 않아서 오히려 당혹스러웠다. 너무나 힘든 일이 닥친 친구를 볼 일이 두렵고 무서워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부터 들었으니 나는 얼마나 이기적인 인간인가. 그러나 이 사건은 '내' 일이 아니다. 힘든 사건들을 겪는 와중에 여러 친구들이 위로하려고 애썼어도 결국은 이겨내는 것은 온전히 내 일이었던 것 처럼 그 공포와 두려움, 막막함을 내가 완전히 알고 함께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할 것이다. 세상의 중심은 내가 아니다. 우리는 각자의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일 뿐...


그러니 그만 두려워 하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일들을 찾아보자. 힘든것은 친구가 실컷 할테니까 그것 말고 다른 것을 해 보자. 친구가 조금이라도 덜 힘들어 질 수 있는 일을. 


그제서야 비로소 눈물이 났다. 


친구를 만나 밥을 먹고, 조용한 궁을 산책했고, 차를 마셨다. 내가 간병을 해 주겠지만 아마 잔소리를 많이 하게 될거라고 말했다. 우리는 깔깔대며 웃었다. 


그녀가 그녀의 세상에서 너무 힘들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해보자. 그리고 나는 나의 세상을 또 살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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