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훅 하고 슬픔이 밀려들었던 이유는 아마도 혼자 방콕행 비행기를 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자정에 가까운 밤에 낯선곳에 있다보면 느껴지는 약간은 쓸쓸한 감정들은 때로 그 시간들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한다. 혼자 핀란드의 기차역이라든가, 겨울의 캠퍼스, 미얀마의 공항 맞은편 술집에 있었을때 뜬금없이 느껴진 그 약간 쓸쓸한 느낌이 싫지 않았다. 그런 기분들은 쌉쌀하지만 조금은 달콤하기도 한, 대략 90프로 다크초코렛 같은 것이어서 내심으로는 가끔 이런 느낌도 좋구나, 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엔 정말이지 훅, 하고 슬픔이 올라오더니 눈가가 시큰거리기 까지 하는 것이다.
간만의 혼자만의 여행이다. 지난번 캄보디아 여행 이후로 있었던 세 번의 여행은 모두 나의 소중한 여행친구와 함께 였기 때문에 그저 신나고 즐겁고 가끔 짜증나고 뭐 그럴 지언정 쌉쌀이고 쓸쓸이고 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이 기대되기도 했다. 이젠 내게 국내 여행이나 다름없어진 베트남이 아닌 것도 좋았지만, 그렇다고 처음 태국을 여행했을때 처럼 바쁘게 여러 곳을 돌아다닐 생각은 없었다. 그런 여행은 겨울에 친구랑 다시 할 계획이었으니, 이번엔 잔뜩 게으름이나 피워야지 했다. 수영에 요즘 좀 미쳐있던 터라 가성비 좋은, 넓은 야외 수영장이 있는 호텔에서 묵는 것이 이번 여행의 주된 스케줄이다. 그 와중에 물밀듯 밀려온 이 감정은 도대체 어디에서 이렇게 불현듯 나타난거지 싶었는데 곧 이유를 깨달아 버렸다. 목적지가 태국 방콕공항이어서 였다. 망할 전남편과의 연애의 시작점이자, 결혼의 시작점.
기억이라는 건, 참 신기하다. 불현듯 이렇게 뜬금없이 떠오르는 기억들은 대체로 그때의 감정과 섞여 있다. 그러니 이젠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다고 해도 사양하고 싶은 그런 사람과의 기억이 그렇게 애뜻하게 떠오르는 거겠지. 그런 기억들은 여하튼 가장 아름다운 감정들과 한 세트이기 때문에 아무리 내가 이젠 아니라 한들, 그 기억과 연관된 감정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래, 뭐, 엄청나게 세기의 사랑을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기분이 드는 기억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내가 혼자하는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 안에 있는지도 몰랐던 어떤 기억들, 혹은 감정들을 새삼 꺼내어 정리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달라진 나와 마주하게 된다. 좋았던 모든 기억들이 내게, 앞으로도 좋은 일이 많을 거라고 말해주는 것도 같다. 여전히 나는 계속 이 흥미진진한 세상을, 변덕스러운 나를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다. 사는건 참 재미있는 일이다.
2015년 방콕, 끄라비, 피피섬 신혼여행 이후 다시 찾은 태국이다. 처음 여행지이자 나의 연애의 시작점이자, 신혼여행지이자, 모든 동남아 여행의 기점, 혹은 휴식처가 되어준 태국에로의 여행은 뭔가 그간 소홀했던 고향에 온것 같은 느낌이다. 미얀마와 베트남, 라오스와 달리, 정작 편하게 드나든 태국은 몇몇 유명 여행지만, 그것도 매우 게으르게 돌아다녔을 뿐이어서 아는게 별로 없다. 근데 원래 그런 거 아닌가? 정작 고향이라고 해도 막상 여행온 친구들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그런게 고향인거지. 그러니까, 간만에 고향에 왔다. 그리고 이번에도 잔뜩 나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어리광을 피우다 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