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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미 Jul 11. 2024

한다고 했으니 하는걸로.

40대, 무에타이를 배워봤다.

무에타이를 배우는 동안 브런치를 매일 쓰기로 마음먹어놓고 벌써 3일이나 빼먹었다. 그래도 다행히 무에타이는, 계획한 대로 어떻게든 나가고 있다. 일단 도장에 간 뒤에야 바닥을 기어 다니든 말든, 이 몸뚱이를 무에타이 도장으로 옮겨보는 것이다.


나름 즐거웠던 치앙마이에서의 나날에 위기가 (또?) 찾아온 이유는 숙소를 옮겼기 때문이다. 비수기 특가 덕분에 너무 싼 가격에 맞지 않는 좋은 호텔을 이용할 수 있었다 보니, 새로 옮긴 곳은 그보다 더 비싼(물론 조식이 포함된 가격이긴 한데) 가격에도 불구하고 훨씬 허름한 숙소에 묵게 된 것이다. 숙소를 옮기는 것을 귀찮아하는 내가 이름도 거창한 ‘에코 리조트’에 묵기로 한 이유는 단순했다. 그저, 치앙마이의 서쪽에서 10일 정도 묵을 테니, 반대쪽인 동쪽에서도 3일 정도 묵는 것도 괜찮은 생각인 것 같았다. 욕실은 공용이었지만 야외 수영장이 근사하단 후기도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나의 사랑 ‘로터스 팡 수안 깨우’ 호텔을 떠나는 날 아침부터 불편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점심을 먹으러 나가서 맛있는 두리안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먹고 나니 다시 즐거운 기분이 되었기 때문에, 그냥 아침에 아무 이유 없이 잠시 찾아온 기분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원래 지내던 호텔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숙소의 방에 도착하니 기분이 한층 다운되고 말았다. 기운이 다운되면 체력도 떨어지는지, 에어컨을 틀고 허름한 침대에 누워 한 없이 우울해했다. 이제라도 다시 내 사랑 로터스에 돌아가려니, 특가는 끝났고 가격은 거의 3배 이상 뛰어 있었다. 그렇게 무에타이 도장에 가야 할 시간이 되었고, 또다시 가기 싫은 기분이 된 것이다. 무에타이를 가지 않기로 한다면야 합리적이라 볼 수 있는 이유는 많았다. 예를 들어 여전히 부어있는 내 무릎을 보호해야 한다던지, 너무도 피곤하고 지쳤다든지, 등등.


그래도 기분을 바꾸기 위해서는 뭐라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도장으로 갔다. 가끔 별 이유 없이 약간 멜랑콜리한 기분이 찾아올 때, 어릴 적에는 영문을 모르고 그 기분에 빠져 지냈다. 하지만 ‘우울증에 뇌과학’이라는 책의 신봉자가 된 지금은 내 뇌 호르몬의 방향성을 변화시킬 다양한 방법을 써 본다. 이제 그 다양한 옵션에 하나가 더 추가가 된 것이다.


1. 아무 글이나 쓴다.

2. 책을 읽는다.

3. 잠시 산책한다.

4. 수영한다.

5. 등산을 한다.

6. 무에타이를 한다. (NEW!)


할까 말까 고민하며 한동안 스트레스를 받을 바에야 그냥 해버리는 게 내 정신건강에도 좋다. 그러나 그렇게 도장에 간다고 해서 그 사실만으로 갑자기 의욕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는데, 다행히 그날따라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코치 세명으로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사람이 갑작스럽게 애매한 네시반 수업에 들이닥친 것이다. 그래서 굳이 개인적인 의욕을 불태우지 않아도 인파에 숨어 어영부영 수업을 따라갈 수 있었다. 그렇게 어찌어찌 하루를 흘려보내고도 여전히 숙소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단 하룻밤만 자고 나서, 다음날에도 영 마음이 불편하면 다른 호텔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엔 이 근처에 마음에 드는 로컬 레스토랑과 과일 스무디 집, 각종 간식 노점을 발견한 것이다.


싸지만 맛은 훌륭하기 그지없는 바나나 로티와 아보카도 스무디를 들고 돌아온 숙소는 전과 달라 보였다. 나무가 우거진 널찍한 정원 한쪽에 자리한 낡은 건물이 나름 운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오래된 학교를 개조한 숙소는, 곳곳에 나무가 아주 울창해 삭막하지 않다. 넓은 수영장의 물도 이용자가 많지 않아서인지, 이전의 로터스 호텔보다 깨끗하다. 치앙마이의 재래시장과도 도보 20분 거리에 있고, 가는 길에 만나는 강변도 볼만하다. 무엇보다 이전의 호텔 인근 지역에서 느낀 지나치게 상업적인 분위기가 없다. 중고등학생 정도의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달달한 간식들을 사 먹고, 지역의 주민들이 허름한 레스토랑에서 저렴하지만 맛있는 저녁을 사 먹는, 그런 분위기가 좋았다. 그렇게 이 숙소와 정을 붙이게 된 것이다. 사람의 기분이라는 게 이렇게 단순하다. 아니, 내가 단순한 걸까?


그래서 어제는 나답지 않게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작은 카페들을 들르고, 노점의 간식들을 사 먹고, 대형 시장도 둘러보았다. 드디어 우기가 본격적으로 찾아온 것인지 중간중간에 비도 억수같이 쏟아졌다. 그래서인지, 네시반 수업에 비를 뚫고 무에타이 도장에 도착한 수강생은 오로지 나뿐이었고, 덕분에 코치와 내내 1:1 수업을 듣는 호사(겸 혹사…) 스러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무에타이도 이제 단 하루, 치앙마이에서의 시간은 이틀 남았다. 오늘은 하늘에 잔뜩 구름이 낀, 선선한 날씨라 돌아다니기에도, 무에타이를 배우기에도 아주 최적이다. 그동안 별로 한 일도 없이 수영과 무에타이, 글쓰기만 하고 지냈는데도 어느새 이곳이 정이 들었나 보다. 하지만 다시 돌아오기까지 또 많은 시간이 흐를 테고, 여기 이 사람들과 다시 만날 일은 없을 텐데. 벌써부터 아쉽고, 또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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