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도 실수할 때가 있다
이순신 장군의 생애에서 장군 스스로도 생각할 때 가장 뼈아픈 장면은 1587년 조산보 만호 및 녹둔도 둔전관을 맡고 있을 때가 아닐까 한다. 둔전관을 맡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여진족이 침입하여 병사 11명이 죽고, 백성들이 납치되고 말도 10여필을 빼앗기게 되었다. 이순신 장군은 둔전관을 맡고 자신의 상사인 병사 이일李鎰에게 위험하고 병사가 적으니 병력증강을 지속적으로 요청하였으나 묵살을 당했다.
이 책임을 이순신에게 덮어 씌워 경흥부사 이경록李慶祿과 함께 여진족의 침입 때 패하였다는 죄를 받아 수금되어 벌을 받게 되었으나, 지속적으로 병력증강을 보고한 기록이 남아 있어 조정에서는 적당히 백의종군으로 마무리를 하게 되었다. 이후 이순신은 이일 휘하에서 종군하며 여진족 장수 우을기내于乙其乃를 잡은 공으로 사면을 받아 복직되었다.
이 사건은 이순신 장군에게 어떤 자극과 배움을 주었을까? 자신의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한 것이지만 승리를 위해서는 더욱 신중하고 방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아무리 위대한 성현이라고 해도 작은 실수들은 누구나 있다. 이 실수, 실패를 통해 배우는 사람이 있고, 다시 그 행동을 반복하는 사람이 있다. 장군의 일기는 이런 실수를 더욱 줄여 보려는 생각의 정리를 위한 도구가 아니었을까 싶다.
훗날 이순신 장군의 일화 중에서 이런 내용이 있다. 장군은 밤낮으로 갑옷을 벗고 누운 적이 없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 술 한잔을 하고 모든 장수들을 불러 왜적들은 간교해서 달빛이 없을 때 습격하겠다고 생각하겠지만 오늘 같이 달빛이 밝을 때도 습격해 올 수 있으니 이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을 하였다. 얼마 뒤 후선에서 왜적들이 쳐들어온다는 보고가 왔는데 적선이 크게 많았다고 한다. 대포를 쏘고 방비를 하자 왜군이 어쩔 수 없이 물러갔다고 한다. 이 사건 뒤에 이순신 장군을 귀신장수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순신 장군에 대하여 내려오는 여러 일화에는 한치의 방심도 없는 장군의 모습이 그려진다. 사람이 한 분야에 최선을 다하면 얻어지는 그 무엇, 요즘 말로는 ‘촉’, ‘감’이 정말 좋으셨다는 생각이 든다.
스펜서 존슨이 지은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에는 이런 마음의 끈을 놓치지 않는 것을 운동화라고 표현한다. 오랜 기간 안정적인 환경에 처한 사람들은 운동화를 잃어버렸고, 생쥐들은 본능적으로 운동화를 항상 목에 걸고 있었다. 결국 위기가 오자 가장 빠르게 길을 찾아 살아남은 것은 생쥐들이었다.
큰 조직에 근무하는 많은 사람들이 어느 순간 타성에 젖어서 큰 위기가 왔을 때, 우왕좌왕하는 것을 요즘에도 많이 보고 있다. 거대한 조직도 단 한방의 방심에 무너질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은 리더로서는 정말 중요한 덕목이 아닐 수 없다. 항상 겸손하게 상황을 냉정히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