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노고와 시간, 굳은 살을 인정해준다는 것
"좋겠다! 넌 원래 설명도 잘하고 말을 잘하잖아."
그 순간 나는 내 일을 위해, 내 월급 값을 하기위해 종종 잠도 줄여가며 애쓰고 노력했던 시간이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하는 일은 어떤 자리, 어떤 상대이든 크게 긴장하지 않고 고객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체크해야 할 사항, 설명해야 할 내용, 방어해야 할 것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이 것을 잘해내지 않으면 회사의 수익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물론, 여러 명의 실무자들이 정말 개고생을 하게된다. 그만큼 잘 해내야만 하는 일인것이다.
그는 나에게 그런 일을 넌 원래 잘하니 너에게는 쉬운 거 아니냐고 말하고 있었다.
저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노력하며 일을 해왔던 십여년의 시간이 무시당하는 기분마저 들기도 했다.
원래 잘한다고? 뭘보고? 도대체 언제부터 잘하는 게 원래 잘하는 건데?
나는 도대체 뭐가 서러웠을까?
그가 본인이 잘하는 건 피나는 노력의 결과라고 공공연히 말하면서, 내가 잘 하는 건 '원래' 잘하는 거라고 말하는 그가 너무 얄밉고 서러운 기분마저 들었다.
꽤 긴 시간동안 그의 말이 내 마음에 유리잔 벽에 붙어 잘 씻겨내려가지 않는 찌꺼기처럼 남아있었다. 그가 그릇이 작아 나의 업무적 경력, 실력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화를 담아 결론을 지었던 것도 같다.
도대체 왜... 저 말 한마디가 뭐라고 화가 날만큼 서럽고 억울했을까?
오랜 시간이 지나 문득 궁금해졌다.
몇 차례 반복되었던 저 상황에서 느꼈던 나의 화와 서러움의 원인이 정말 상대인 '그'에게 있었던 것일까?
그에게는 어떤 이유에서든 그저 '원래' 언어적인 능력이 좋게 타고난 사람 정도로 여겨졌을 수 있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당시의 나는 일을 잘하고 있었고 좋은 결과를 내고 있었으니 그의 생각은 전혀 중요할 것이 없었다.
서러움의 원인은 내 안에 있었던 걸까?
어쩌면 그가 내 능력을 인정하길 바라는 마음이 컸거나, 나의 시간가 노력을 십분 인정하며 받들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던 것이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당시의 나는 누구에게든 나의 눈물겹게 힘든 수년간의 직장인 생활을 미치게 위로받고 싶었던 시기였던 것이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맞다. 그 때 나는 인정과 위로가 필요했던 시기였고 조금마한 실패에도 크게 흔들릴만큼 지쳐있던 때였다.
그런 나에게 '원래'라는 단어는 내가 힘들다는 것조차 인정해주지 않는 말로 다가왔던 것이다.
힘듦에 위로가 되거나 혹은 노력을 인정해주는 질문
누구든 사람들에게 '원래'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어떠한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숨이 턱까지 차오를만큼 힘든 시간을 거쳐왔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 시간을 지금 견뎌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누구에게든 '원래 잘하잖아'라는 말은 쉽사리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원래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 지점까지 오는 동안의 노고를 모두 알아 줄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에게 어떤 의미와 무게인지 모를 시간을 뭉텅 잘라내버리는 기분을 느끼게 할 필요는 더더욱 없으니 말이다.
누구든 그가 가진 여러 능력 중 내 눈에 띄는 어떠한 것이 있다면 그 안에는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과 최대의 땀이 베어있을 확률이 높다. 그 능력의 크기가 객관적으로 크던 작던 상관없이.
차라리 '어떻게 하면 그걸 그렇게 잘 할 수 있는거야?'라고 물어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