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떠나는 것 자체가 목적인 부부
솔직히 말하면 뭘 먹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왕복 7시간쯤 걸려 밥을 먹으러 다녀왔건만 뭘 먹었는지 너무 빨리 잊고 말았다.
서울에서 속초까지 주말에 가려면 새벽에 출발하지 않는 이상 아무리 안막힌다고 해도 3시간이 넘게 걸린다.
중간에 휴게소에 한두 번은 들르게 되므로 3시간30분 정도를 잡는 것이 현실적이다.
일때문에 출장으로 급하게 다녀오는 것이 아닌 이상 어지간하면 속초를 당일치기로 다녀오지는 않는다.
오고가는 시간과 비용이 아까워서라도 그런 비효율적인 여행은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그 비효율적인 여정을 선택했다.
"오늘 어디 갈까? 날씨가 너무 좋아."
"어디가지?"
"바다볼까? 오늘은 산보다는 바다가 나은 것 같아."
"그래! 바다는 동해지~"
"그럼... 속초? 운전 괜찮겠어? 안피곤해?"
"응. 괜찮아~ 자, 가자~"
"가서 뭐 먹지?"
"가면서 찾아보자."
"일어나자! 해 떠있을 때 바다보려면 얼른 출발해야해."
토요일 느즈막히 일어난 우리 부분의 대화이다.
이 대화만 보면 히피스러운 부부이거나 여행이 취미인 부부이거나, 자유롭자고 작정한 부부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우리의 실상은 1박2일의 시간도 내기 힘들어 어디든 당일로 다녀와야 하는 부부이다.
월급쟁이의 삶을 벗어나기로 결정하고 난 이후 남편은 12시 이전에 퇴근한 날이 거의 없다. 주말에도 이틀 내내 쉬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옆에서 함께 일을 하기도 하고 지켜보기도 하는 나 또한 마음이 그닥 여유롭지는 못하다.
신경써야 할 것이 너무 많고 스트레스 지수도 높은데다 당장 해결책은 없으나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일들이 툭하면 발등에 떨어지는 일상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 중 두 명인 것이다.
잠시 머리도 마음도 현실에서 살짝 비껴가게 해줘야 살 것같은 날이 있다.
속초를 다녀온 날도 그런 날 중의 하루였다.
사실 우리에게 중요한것은 어디에가서 무엇을 먹었는지보다 함께 차를 타고 서울을 벗어남과 동시에 머리도 마음도 잠시 현실을 벗어나는 일이다.
그 순간에 무엇을 먹을지에 집중하는 즐거움까지 더해진 한나절의 행복이 된다.
평일에도 여유있는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는 우리는 가끔 함께 떠나는 차 안에서의 대화가 소중할 수밖에 없다. 심각한 대화, 실없는 대화, 소소한 싸움 또는 나름 심각한 싸움까지.
짧지 않은 시간동안 마음 편하게 온전히 그 대화에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 시간이다보니 먼 길을 달려 다녀오긴 했는데 어느 식당에서 무엇을 먹었는지 제대로 기억을 못하기도 한다.
나름 구글링을 해 리뷰도 꼼꼼히 읽어가며 취사선택하여 가는 집인데 허무하게 너무 쉽게 잊고만다.
대신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함께 다녀오면서 나눈 대화, 공유된 즐거움과 눈에 담긴 특별한 풍경, 날씨, 바람 같은 것들이다.
그렇게 서로 일상을 다시 살아내는 힘을 주고 받는 시간인 것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어딘가에 가서 '무엇을' 먹었는가가 아니라 '어딘가'를 다녀오는 과정과 그 시간 안에 있는 위안인 탓이다.
그래도 이제 다녀온 곳은 사진이라도 찍던가 짧게 메모라도 남겨놔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지나면 그 기록들이 추억이 될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