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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코치 Oct 18. 2024

일상의 말들 - '다 먹었어?'

말이 갖는 맥락적 의미가 상처가 될 때

최근에 나는 재택 근무 시간이 많아졌다. 아침에 여유 시간이 생기다 보니 남편을 빈 속으로 그냥 출근 시키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아 간단한 요기거리라도 챙겨주고 있다. 애써 밥과 국(물론 냉동국을 데워주는 것이지만)에 계란후라이 정도를 챙겨주는 날도 있고 아주 간단하게 바나나와 삶은 계란만 챙겨주는 날도 있다. 메뉴에 까다롭게 굴지 않으니 내 아침 컨디션에 따라 마음대로 선택하면 된다. 그래도 이왕 챙겨주는 거 따뜻한 국과 밥을 챙겨주는 것이 뭔가 제대로 해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게 먹을 때 남편의 표정도 더 좋았던 것 같다. 


시간이 있고 메뉴의 제약이 없으니 챙겨주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남편이 맛있어 하는 국과 반찬으로 차려주면 밥 먹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것이다. 남편은 평소에도 나보다 밥 먹는 시간이 길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는 식사 시간이 더 길어진다. 나도 남편도 맛있는 음식 먹는 것을 좋아하고 즐기기 때문에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한데 출근 전 아침은 이야기가 다르다. 성격이 급한 편인 나는 까딱하면 지각을 할 시간인데도 여유있게 밥을 먹고 있는 남편을 보면 조급증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출발해야 하는 시간이 코 앞인데 여유로운 속도의 숟가락질하며 눈은 뉴스 화면을 향하는 모습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진다.


"자기야, 다 먹었어?" 

아침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최대한 친절하고 평온한 톤으로 남편에게 물었다. 남편은 대답이 없다. 다시 물었다. 

"왜 대답이 없어?"

남편이 퉁명스럽게 답한다. 

"먹고 있는 걸 보면서 다 먹었냐고 물어보는 거잖아. 빨리 먹고 출근 준비하라고."

맞는 말이라 뭐라 대꾸할 말이 없어 머릿속을 바쁘게 움직였다. 뭔가 말을 하지 않으면 서로 기분만 상한채 하루를 시작할 것 같아 마음이 급했다. 결국 남편에게 사과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기로 결정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빤히 보이는 책망의 의도에 마음이 상한 사람한테 딱히 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하하. 그러네... 늦을까봐 그랬지. 미안해." 

얼렁뚱땅 넘어갈 때는 웃음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 살짝 헤헤거리는 것으로 상황을 무마시켰다. 


남편이 출근한 후 컴퓨터 앞에 앉아 생각해보니 아이도 아니고 본인이 알아서 시간 조절을 하거나 상황에 대한 대처를 할 터인데 왜 그랬을까 후회가 된다.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 하는 것이 맞냐 안맞냐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느낀 조급증의 근원은 내 기준과는 다르게 행동하는 남편에 대한 불안이었을 것이다. 결국 내 기준이 맞고, 내가 상황을 해결하는 방식이 더 안전하다는 생각. 


나이가 들면서 사람마다 각자 자신의 기준이 있다는 것을 꾸준히 배워가고 있다. 그 어떤 기준도 유일한 정답이라고 할 수 없고,  어느 것이 더 낫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내 기준대로 세상을 보고 상대를 보고 상황을 해석한다. 그날 아침의 대화 또한 그러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늦게 밥을 먹어도 아무렇지도 않냐 물으면 단호하게 답할 수 있다. '아니요!'라고. 여전히 여유롭게 밥 먹는 모습을 보는 마음은 초초하고 답답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택한 방법은 아침을 챙겨주고 나는 씻으러 욕실로 들어가버리는 것이다. 나는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남편이 자신의 시간을 알아서 살도록 두는 방법. 

그것도 안될 때는 그냥 직접적으로 얘기한다. "자기야, 고만 먹어. 더 늦으면 안될 것 같아."라고. 그렇다고 남편이 내 말에 빠릿하게 움직이지는 않지만 말이다. 애둘러 얘기하는 말에 기분이 상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다. 물론 그것도 매일하면 똑같이 싸움이 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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