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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루 clou Jan 11. 2022

19화. 멸공과 스타벅스 커피.

너희가 멸공을 아느냐.

2019년 7월의 어느 날. 일본의 수출규제조치에 맞서 NO Japan 캠페인의 일환으로 유니클로 불매운동에 남몰래 동참했던 것은 어쨌든 남들이 들으면 웃을지 모르지만 아주 조그마한 애국심의 발로였다. 그때까지 유니클로의 베스트셀러인 히트텍 언더웨어를 적어도 1, 2년에 한번씩은 구매했을지언정, 나는 그 날 이후로 유니클로 제품을 구매한 적이 없다. 그러나 그것은 나 혼자서 결정하고 선택한 일이지, 내 가족과 지인들에게 나의 불매운동 참여를 알리거나 권유한 적은 없다. 


2022년 새해벽두부터 이상한 일, 정치판으로 보면 재밌는 일이 또 벌어지고 있다.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의 "멸공"이 신세계그룹 계열 불매운동으로 번진 것이다. 

민주당 선대위 대변인(?) 직함이 맞는지 모르겠다. 기어코 현근택씨가 본인의 트위터 글로 포문을 활짝 열어버렸다. 

"앞으로 스타벅스 커피는 마시지 않겠습니다."

스타벅스 본사 측 또한 아연실색했을 것이다. 도대체 멸공과 스타벅스가 무슨 관련이 있다고. 


정용진씨는 헤비 인플루언서다. 그의 트위터가 개인 SNS일지라도, 수많은 팔로워를 거느리고 언론에 종종 소개될 정도의 파급력을 본인 자신이 인지하고 있다면 그에 따르는 모든 결과도 본인이 결국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일반인들이 정용진씨의 '일상의 언어'가 거슬려서 스스로 신세계 백화점이나 이마트에 가지 않거나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고 하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의 언어들이 비호감으로 느껴져 신세계 기업 자체가 싫어지면, 안가고 안먹으면 그만이라는 얘기다.  

정치인 역시 인플루언서다. 기업인보다 팔로워 수가 적을지는 몰라도, 정치인의 말 한마디는 때로 선동이 되고 그 효과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실로 폭발적이다. 내가 <18화. 가면토론회를 보고..>를 쓴지 4일만에 다시 글을 쓰게된 건 이 사안이 정말 심각한 사례라고 느꼈기 때문일거다.


서울경제의 2022년 1월 10일자 기사 일부를 발췌해 옮겨본다. 

현근택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은 전날 자신의 트위터에 글을 올려 "앞으로 스타벅스 커피는 마시지 않겠다"고 썼다. 현 대변인은 "이마트, 신세계, 스타벅스에 가지맙시다"라는 트윗을 공유하기도 했다.

이 후보 지지자로 알려진 팟캐스트 '나꼼수(나는 꼼수다)' 출신 김용민씨도 같은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용진이 소비자를 우습게 여기다 못해 선거운동에 뛰어들었는데, 그의 매장에는 갈 수 없는 노릇"이라며 "이마트, 스타벅스, 노브랜드, 신세계는 온·오프 모두 발길 끊는다"고 했다.


솔직히 이 기사를 보고 든 생각은 '작정하고 신세계 그룹을 굴복시키거나 멸문지화시키겠다는 거구나'였다. 

기사에 삽입된 사진을 보면, 2019년 NO JAPAN 캠페인에서 JAPAN을 단지 정용진으로 바꾼것 아닌가. 

일본 = 정용진(신세계)?라는 공식. 읭?


정용진씨는 일본이나 중국이 아니다. 우리가 애국심을 발현할 대상이 전혀 아니다. 그가 일본처럼 악의를 가지고 대한민국에 실질적 손해를 끼친것도 아니다. 

사실 그가 '멸공'의 의미와 관련된 해시태그를 단 것은 작년 11월 '잭슨피자' 홍보와 함께 올린 '공산당이 싫어요'부터였다. 당시 '공산당이 싫어요'란 해시태그엔 왜 '좋아요'가 많이 달렸을까. 물론 걱정하는 댓글도 달렸을테고, 개인 SNS 놀이에서 벗어나 중국과의 사업적 관계를 고려한 것인지, 이번에 중국과 상관없다고 선을 그은 것도 그런 맥락이다. 

어쨌든 정치적 발언을 했다는 오너리스크의 명목 아래 신세계 그룹 주가가 하락하는 것 역시 정용진씨가 감당해야 할 몫이지만, 요즘 TV만 틀면 나오는 여당 정치인이 대놓고 앞으로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지 않겠다고 하는 건 단순 개인 의견 피력이 아니라, 고도의 정치적인 계산이며 지나치게 악의적인 선동이라고 생각한다. 

'멸공'이란 단어 하나가 '멸신(멸신세계)'로 바뀌어가는 아이러니한 상황.    


여기서 문득 의문점이 들 수도 있다. 다들 왜 '멸공'이란 단어에 집착할까. '멸공'은 어느 기자의 말처럼 정치용어이거나 선거운동의 일환인걸까.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멸공'은 적어도 2000년대 초반 이전 대한민국 군필(클루가 2000년대 초반에 전역하였으므로, 그 이후 사실관계는 모르겠음) 남성들에겐 익숙한 단어다. 군대에서 '필승', '단결'만큼이나 흔히 쓰던 구호니까. 누구 말대로 매일 아침 구보때마다 목청껏 부르던 <멸공의 횃불>이라는 군가에도 나오니까 '멸공은 보수'라는 낙인은 찍지 말자. 이미 그 단어는 2000년보다도 훨씬 이전인 군부정권 시절과 함께 희미해져버린 단어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아이디어를 냈고, 어떤 놈이 그런 퍼포먼스를 하자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국민의힘은 이번엔 정말이지 오해받기 딱좋은 일베스러운 짓(?)을 했다. 처음엔 나도 단순히 정용진씨를 위로하기 위해, 윤후보가 그런 이마트 장보기 사진을 올렸나 했는데 하필 달걀, 파, 멸치, 콩이라니. 거기서 끝났으면 그나마 호사가들의 견강부회로 치부할 수 있었을텐데, 그걸 가지고 당에서 아예 멸콩 챌린지를 해버리네. -_-; 

하.. 국민의힘은 진짜 멸콩 챌린지를 무슨 루게릭병 환자들을 위한 아이스버킷 챌린지 쯤으로 여기는건지 답이 안나온다.  

그러니 민주당에서는 작년부터 "공산당이 싫어요" 할때는 가만히 있다가, "멸공"때는 '어라? 이놈들이 죽이 잘맞네.' 이러면서 애먼 정용진씨와 신세계를 쥐어패는것 아닌가.


정치인들은 저마다 화젯거리를 정치영역으로 끌어와 퍼포먼스를 펼쳐서 먹히면 좋고 안먹혀도 그만이지만, 결국 그 싸움에 휘말려 피해를 보는건 일반 국민이 될 확률이 높다. 이번 사안 역시 기시감이 드는건 어쩔 수 없다. 

작년에 광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자영업자가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조국 전 장관이 트위터를 통한 좌표 찍기로 여권 강성 지지자들에게 전화폭탄 및 신상캐기 등의 집중공격을 받은 일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현근택씨의 이번 스타벅스 트윗 및 신세계 불매 트윗 공유가 그와 다를게 무엇인가. 우리는 왜 여당 선대위 대변인의 노골적인 기업 불매 캠페인을 접해야 하는 걸까. 공격을 하고 싶으면 '일상의 언어가 정치로 이용될 수 있다는 것까지 계산하는 감과 센스'를 함양하지 못한 정용진씨와 그 기업체가 아니라, 오히려 멸콩 챌린지를 이어간 국민의힘 방향으로만 했어야 하지 않을까.    


화려한 언변의 현근택씨를 당해낼 재간은 없지만, 진심으로 그에게 묻고는 싶다. 

"당신은 2019년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NO JAPAN 캠페인을 진행할때, 롯데 그룹 혹은 일본 기업 불매를 트윗하거나 공유한 적이 있습니까?" 

"혹시 있다면, 대한민국 국민 정용진씨와 신세계 그룹은 일본과 같은 수준의 대우를 받아야 합니까?"            

민주당 선대위 대변인 현근택씨, 답변을 기다립니다.   

(비밀로 할테니, 솔직히 신세계 그룹이 망해버렸으면 좋겠다는 진솔한 쪽지 답변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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