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마음
얼마전의 일이다.
아내가 차려준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데, 냄새가 난다.
어묵볶음에서 나고, 갓지은 밥에서 냄새가 난다.
우리 엄마 냄새가 난다.
20년도 더 지난 일이다.
상상해보라.
엄마는 매일같이 4남매의 도시락을 준비하셨다.
늘 새벽마다 밥을 짓고 새로이 반찬을 만들고,
밥은 너무 뜨겁지 않도록 도시락에 담아 뚜껑을 열어놓고,
반찬은 일사불란하게 저마다 다른 스탠 반찬통에 담아놓고,
행여나 서로의 도시락이 섞이지 않도록 부엌 여기저기 펼쳐놓고.
큰누나와 막내인 나의 나이차가 9살이니,
엄마는 거의 20년동안 도시락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셨다.
아이러니하게도,
학교급식을 통해 도시락 해방을 맞이하신게,
대학 입학을 불과 1년도 남겨놓지 않은
내 고등학교 3학년때였다.
아버지가 곧 농부의 아들이었으니,
대대로 우리집에 쌀 걱정은 없었다.
그러나 도시락 반찬은 그렇치 않았다.
우리집 도시락 반찬의 기준은
무엇보다 빨리 만들 수 있는 것이어야 하는 게 첫번째였다.
엄마는 도시락에 가족들 아침까지 해결하고 일을 나가셨기에
또한 적어도 2~3명의 도시락을 매일 싸야했기에
시간싸움은 늘 엄마 혼자만의 몫이었다.
반찬의 가짓수는 아무리 많아봐야 두가지였다.
어떤 날은 새콤빨갛게 버무려진 무생채 하나만 반찬통에 담겨 있었다.
어떤 날은 짭쪼롬하게 무쳐진 파래무침 하나만 반찬통에 담겨 있었다.
어떤 날은 마요네즈로 맛을 낸 오징어채 하나만 반찬통에 담겨 있었다.
그런 날은 조미김을 같이 넣어주셨다.
가끔은 네모반듯하게 썰어진 냉동돈까스가 있거나,
케찹을 두르고 칼집이 난 비엔나 소세지가 들어있는데,
그런 날은 반찬이 한가지 뿐이라도 친구들 앞에서 괜히 으쓱해진 날이었다.
도시락 형편이 그리 좋지 못했을지언정,
엄마는 단 한번도 평소 밥상에 올리던 김치와 밑반찬은 도시락으로 싸지 않으셨다.
오히려 매일 새롭게 도시락 반찬을 만들고 남은 것을 그나마 밥상에 올리셨다.
그것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엄마가 자식들에게 지켜주고싶은 최소한의 어떤 다짐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학교 점심시간이 될때까지 도시락 반찬이 무언지 모를때가 많았다.
그냥 싸주는 대로 들고가서, 남기지 않고 다 먹을 뿐.
조미김이 도시락 가방에 들어있을땐, 친구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반찬이겠거니 짐작했고,
기름 냄새가 좀 나는듯 하면, 그제서야 뭔가 기대를 품게 했다.
오늘 도시락 반찬은 무엇일까 등교하기 전부터 미리 궁금해하진 않았다는 뜻이다.
결국 도시락 자체가 우리에게 주는 즐거움은 많지 않았다.
음..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도 우린 투정하지 않았다.
오늘의 도시락 반찬이 뭔지 몰라도 열어보지 않았다.
도시락 반찬이 친구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나혼자 많이 집어먹는 반찬이라 해도, 그냥 그런가부다 했다.
어렸을땐 왜 서운해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
나이 들어 새삼 깨닫는 건,
엄마는 우리가 잠에서 깨기도 전에 새벽 불을 밝히며 도시락을 준비하셨다.
그러니 우리가 도시락 반찬이 뭔지 알수도 없을 뿐더러, 그리 큰 기대도 하지 않았던게 아닐까.
아내가 차려준 따뜻한 밥에서, 씹고 있는 어묵에서 엄마의 도시락 맛이 난다.
코끝이 시려온다.
어머니 은혜 갚으려면 한참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