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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간감 Jul 24. 2021

나와 같은 공간의 뮤지컬 영화 <인 더 하이츠>

[어땠어요?] 나와 같은 공간의 뮤지컬 영화 <인 더 하이츠>


무더운 여름이 계속되는 가운데 여름을 배경으로 한 뮤지컬 영화가 소리 소문 없이 개봉 후 종적을 감추고 있습니다. 국내 배우들로 재연까지 있었던 <인 더 하이츠>가 극장과 HBO 맥스 독점 스트리밍으로 미국에서 선을 보였다고 하네요. 개봉관이 많이 없어 가까스로 보고 왔습니다.


'워싱턴 하이츠'는 라틴계 사람들이 모여사는 동네입니다. 맨하튼 근처의 이 작은 골목들은 라틴계 미국인, 이민자들의 삶의 터전이죠. 이곳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우스나비(안소니 라모스 분)은 언젠가 도미니카 공화국의 해변으로 아주 떠나버리겠다는 꿈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해변에 땅을 사고 곧 하이츠를 떠날 예정이죠.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바네사(멜리사 바레사 분)입니다. 오래 그녀를 짝사랑한 우스나비는 어떻게 마음을 전할지 고민 중입니다. 바네사는 네일숍에서 일하면서 언젠가 패션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꿈을 꾸고, 스탠포드에서 방학을 맞아 돌아온 니나(레슬리 그레이스 분)은 뭔가 사연이 있는 듯 보입니다. 그런 니나의 전남친 베니(코리 호킨스 분)은 우울해 보이는 니나에게 다시 한걸음 다가갑니다. 


<인 더 하이츠>는 동명의 원작 뮤지컬을 같은 극작가(퀴아라 알레그리아 후데스)와 원작자(린 마누엘 미란다), <스텝 업2>과 <나우 유 씨 미2>,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등으로 특유의 영상미를 구축해온 존추 감독이 합심해서 만들어낸 영화입니다. 브로드웨이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작품인 만큼 영화 안에 꽉 들어찬 노래들이 가장 두드러집니다. 영화의 형식 자체도 대사를 노래로 부르는 경우를 최대한 자제했고 마치 공연을 보듯 노래와 춤이 꽉찬 퍼포먼스들로 러닝타임을 채웠습니다. 2시간 20분이라는 만만치 않은 길이에도 불구하고 라틴 음악 특유의 리듬에 몸을 맡기게 됩니다. 극장 안에서도 미동 없이 영화 보기가 힘들었습니다. 목이랑 손은 자연스레 끄떡이게 되더군요.


영화의 첫인상이 화려한 노래와 퍼포먼스라고 한다면, 차근차근 시간이 지날수록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은 바로 공간이었습니다. 제목인 <인 더 하이츠>에서 느껴지듯이 영화에서 워싱턴 하이츠란 장소는 한 명의 주인공 역할을 합니다. 4명+a의 인물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내는 뮤지컬 특유의 다중 주인공의 구성에서 이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것은 이야기보다 하이츠라는 공간입니다. 그리고 <인 더 하이츠>의 공간은 '재미로서의 화려함'을 선택한 것이 아닌 '라티노의 삶'자체를 선택했습니다.  자식이 없는 대신 모든 이들의 어머니로 살아온 클라우디아 할머니의 작은 방, 평생을 일궈온 사업을 딸 때문에 포기하는 케빈의 택시회사, 주인공 우스나비의 편의점 등등 색은 다르지만 우리가 당장 집 밖을 나가서도 비슷한 공간을 찾을 수 있는 그 생활감이 곳곳에 묻어있습니다. 충실한 노래와 화려한 춤을 선택한 대신 작품이 품은 공간을 함부로 개조하지 않는 그 균형감이 아주 좋았습니다.


결국 <인 더 하이츠>가 주목한 건 미국에 정착한 라티노들의 애환입니다. 아주 흔한 재료인 만큼 이를 요리하는 방법은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이 많습니다. 관객에게 분노를 일으키는 프로토타입의 악역을 정해놓거나 비극의 공식을 따라간 무시무시한 해일이 주인공을 덮치는 식이죠. 영화는 우리가 자주 봐왔던 차별의 공식을 그리는 대신 하이츠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을 선택했습니다. 새로운 꿈을 향한 고민이나 차별 이후의 후유증, 엄마의 엄마부터 이어진 가난과 노동, 면허조차 마음 놓고 가질 수 없는 불안함과 같은 라티노의 여러 모습들을 진중히 살피고 관객에게 쉽게 전달하려 애썼습니다. 애달픈 가사 속에서도 특유의 흥을 잃지 않는 라틴 음악이 그렇듯이 말이죠. 

뮤지컬 영화에 잘 빠져들지 못하는 편인데 앞으로도 여름과 뮤지컬을 떠올릴 때면 하이츠의 라티노들을 떠올릴 거 같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2막 막바지 딱 한 곡을 부르는 조연의 노래와 씬은 아마 제가 뮤지컬 영화를 떠올릴 때 반드시 첫번째 자리를 차지할 것 같습니다. 올해 본 모든 영화의 씬 중 제일 좋았습니다. 결국은 헐리우드 시스템의 영화지만 다양한 민족과 문화와 접속하는 일은 참 귀합니다. 극장이 아니더라도 꼭 한 번은 만나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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