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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간감 Jul 08. 2021

소리없는 질문을 던지는 치열한 서스펜스 <미드나이트>

[어땠어요?] 소리없는 질문을 던지는 치열한 서스펜스 <미드나이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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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 가신지 얼마나 되셨나요? 넷플릭스가 스타트를 끊고 코로나19가 영화관 목숨줄마저 끊어버린 지금의 영화시장 상황은 분명 어둡습니다. 제 주변에서도 1년 넘게 극장에서 영화를 못 봤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마무시한 글로벌 기업에 대응하는 국내 콘텐츠 사업자들의 움직임이 발 빠른 가운데 CJ ENM에서 극장과 티빙 동시 서비스 하는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프로이직러로 잘 알려진 진기주 배우의 청각장애인 연기로 유명세를 탄 < 미드나이트>를 보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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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청각장애인 경미(진기주 분)는 수어콜센터 일을 마치고 엄마(길해연 분)를 차로 데리러 갑니다. 평소와 똑같이 주차하고 집에 들어서는 길, 어디선가 간절한 구조신호가 경미 눈앞으로 날아듭니다. 들을 수도, 소리 내 말할 수도 없는 경미는 불안하지만 신호가 온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끔찍한 현장을 목격합니다. 그때 천연덕스럽게 목격자 연기를 하는 살인마 도식(위하준 분)이 경미를 쫓고 경미는 엄마를 보호하려 반대방향으로 안간힘을 다해 도망칩니다. 피해자의 오빠 종탁(박훈 분)이 현장에 도착하지만 상황은 꼬여가고 경미는 어떻게든 이 긴 밤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두의 예상을 빗나가는 선택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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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이트>는 아주 촘촘한 영화입니다. 영화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이사 갈 이불마냥 압축시키는 선택을 했습니다.  배경의 경우 큰 길가, 주차장, 골목길, 지구대, 집, 번화가 한 블록 정도로 줄일 수 있을 정도고 시간적 배경 또한 미드 <24>보다도 짧은 10여 시간 정도의 이야기입니다. 이런 제한적인 구성은 선뜻 그만큼 돈을 아낄 수 있다는 경제적 선택이지 않나 싶습니다. 반대로 재미를 만들어야 하는 입장에선 그만큼 보여줄 수 있는 선택권이 줄어든단 이야기기도 합니다. <미드나이트>은 한 손에 쥐고 있는 이런 배경이란 방패를 내려놓고 호흡이라는 칼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습니다. 경미와 도식이 만난 그 순간부터 영화는 쉴새없이 내달리기 시작합니다. 도식의 위협-경미의 도주-도식의 다음 수-경미의 응수로 이어지는 추격게임은 눈치 담당 경미의 엄마와 피지컬 담당 종탁의 난입으로 지루하지 않게 극을 이끌었습니다. 러닝타임까지 100분으로 줄여가면서 곁가지를 확실하게 쳐낸 인상이 강했습니다. 서스펜스 특유의 그 아는 맛을 생각하시면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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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청각장애인'이라는 틀안에 <미드나이트>을 가둬 놓지 않더라도 영화의 시선은 아주 선명하게 누군가를 비추고 있습니다. 워낙 매운맛의 스릴러를 좋아하는 한국 영화시장에서 생각보다 많은 영화가 연쇄살인의 가해자에 초점을 맞추곤 합니다. 궁금증을 유발하고 그걸 해결하는 미스터리 구조를 가진 경우가 그렇고 의문의 가해자가 사실 어떤 배경을 가지고 이런 이유로 이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는 식의 이야기가 그렇죠. 개인적으로 한국의 스릴러 영화들의 수준이 상당히 높다고 생각하고 그 구조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미드나이트>는 스케일 대신 호흡을 선택한 것처럼 이 갈림길에서도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영화는 철저하게 피해자에게 초점을 맞추는 스릴러입니다. 경미는 단순히 도망치는 인물로서 이 긴 밤을 버티지 않습니다. 오히려 단순한 장애물은 도식과 갑갑한 상황이고 매 순간마다 선택을 하고 실행하며 돌파해나가는 건 경미입니다. 영화가 큰 변곡점을 그리는 순간들에 어떤 행동들이 있는지 되짚어 보면 여지없이 경미의 눈과 단호한 수어들이 존재하죠. 단순히 '너무 불쌍하고 불안한 피해자'로 가두고 비추지 않았습니다. 삶에 의지를 연료 삼아 한 인간을 뛰게 했고 인간이라 부르기도 아까운 허들들을 새워놨을 뿐이죠. 저는 이러한 영화의 선택에 온전히 동의했고 몇몇 고구마라는 평에는 온전히 반대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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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이트>를 제가 추천하고자 하는 이유는 영화의 선택들이 단순히 장르적 재미를 위한 선택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미드나이트>가 분연히 들고 일어선 칼은 폭력에 노출된 한국 사회에서 '장애'가 가진 '장애'에 대한 저항이었습니다. 어두운 골목길과 연쇄 살인, 무능한 공권력은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설정들입니다. 그 속에서 경미라는 인물이 온갖 턱에 부딪치며 몸으로 던지는 질문들은 아주 직설적입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 보호받지 못하는가' '나보다 더 위험한, 나보다 더 약한 사람을 도울 것인가'. 이렇게 착실하게 장애와 폭력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스릴러는 생각보다 흔치 않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을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공감시키는 일은 더더욱 흔치 않죠. 가까운 예로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 자연스레 떠올랐습니다. 두 작품 모두 분명 완벽한 작품이 아닙니다. 어떤 시각에선 단점이 더 많이 비춰질 작품이란걸 인정합니다. 그러나 치열하게 고민한 작품에는 그만큼 치열한 응원이 필요하다 믿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위기를 고구마로 인식한다는 건, 그만큼 누군가의 삶이 가깝지 않다는 증거일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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