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땠어요?] 당연함을 위한 동화 <정말 먼 곳> 리뷰
전주국제영화제의 독립영화제작지원 프로그램인 전주시네마프로젝트 작품이 코로나로 개봉을 미루다 어렵게 극장을 찾았습니다. 서울을 떠나 화천으로 귀농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정말 먼 곳>은 작지만 조용히 파동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전주국제영화제에 소개된 이후에 여러 영화제에서 평단과 관객 모두의 호응을 이끌어낸 작품이라 저도 기대감을 안고 극장을 찾았습니다.
강원도 화천 양과 소를 키우는 농장에서 일하며 지내는 진우(강길우 분)는 젊은 미혼부입니다. 여느 그 나이대 아이들처럼 뛰어놀기 좋아하는 딸 설(김시하 분)을 키우며 살고 있죠. 농장주인 중만(기주봉 분)과 중만의 딸 문경(기도영 분), 치매기가 있는 중만의 어머니 명순(최금순 분)과는 가족인 듯 가족아닌 가족처럼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반복되는 축사 일이 고될 만도 하지만 진우는 묵묵히 일상을 견뎌내는 것 처럼 보이죠. 그러던 어느날 진우의 친구 현민(홍경 분)이 화천을 찾습니다. 시인이자 진우의 서울친구인 현민의 등장으로 진우의 일상과 마을에는 자그마한 파동이 생기고 이는 손쓸새 없이 커다란 틈을 내기 시작합니다.
<정말 먼 곳>이 관객을 맨 처음 만났을 때 주는 인상은 분명 '작은 영화'라는 판단일 겁니다. 아주 적은 인물과 적은 움직임의 카메라, 배우 때문에 극장을 갈 만큼 유명한 배우가 등장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이곳저곳 마케팅이 많이 된 영화도 아니죠. 독립영화에 관심을 두지 않는 이상 개봉한 사실을 알기도 힘든 영화입니다. 그리고 그런 작은 영화들은 제한된 표현방식 안에서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마련입니다. 냉정한 시선으로 본다면 이런 독립영화들의 특징은 상업영화가 쉬이 도전할 수 없는 이야기에 도전하거나 새로운 표현을 시도하는 신선함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지루하거나 보편적인 즐거움을 주지 않는다는 단점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죠. 그러한 선상에서 이 영화를 소개한다고 해도, <정말 먼 곳>은 조금 다른 자기 길을 간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정말 먼 곳>은 제목에서 그대로 드러나듯 영화가 비추는 배경이 아주 큰 역할을 차지하는 작품입니다. 강원도 화천을 배경으로 한 영화의 공간은 그 자체가 하나의 인물 처럼 자기에게 주어진 순간들을 충실하게 뽐냅니다. 영화에서 인용한 시의 내용처럼 멀고도 가깝고, 현실적인 동시에 동화 같은 배경은 때론 인물의 감정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가, 백설 공주의 그것처럼 인물들의 삶을 잡아먹을 듯한 먹먹함으로 기능하기도 합니다. 공간 자체에 집중하기로 한 똑똑한 연출방식은 카메라의 움직임을 크게 줄 수 없는 독립영화들 중에서도 독보적입니다. 한눈에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선 미술관에 걸린 그림을 보듯 구석구석 살피게 되는 경험은 어마무시한 예산을 활용한 작품에서도 흔히 겪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알던 장소가 맞나 싶을 정도로 정신없이 풍경에 감탄하다 보면 <정말 먼 곳>은 영화 스스로가 원하는 곳으로 관객의 손을 이끌고 갑니다. 앞에서 동화같은 풍경이란 비유를 썼지만 이는 단순히 영화 속 공간만을 위한 표현은 아니었습니다. 아주 무난한 인물의 귀농기를 다룰 것 같던 작품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기심과 선입견을 이야기합니다. 마치 우리가 어렸을 적 신나게 읽기 시작했던 동화들이 아주 보편적인 '당연함'을 알려줬던 것 처럼 말이죠. 몇몇 분들은 아주 납작한 메세지가 아니냐 평가하실 수 도 있겠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아주 편안한 방식의 가족극의 실루엣으로, 눈이 부시게 다듬어 낸 풍경과 함께, 몇 번을 되뇌여도 모자라지 않는 이 '당연함'을 떠드는 일은 꼭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생각보다 아주 어려운 일이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