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드림> 리뷰
지난 96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장편 애니상 후보에 오른 스페인 제작의 애니메이션이 작게나마 관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관람 후기에서 꽤나 진지한 극찬이 오가는 상황이고 적은 상영관 수에 비해 씨네필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고 있는데요.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극찬을 받으며 입소문을 타고 있는 <로봇 드림>을 극장에서 보고 왔습니다.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혼자 생활하는 도그는 문득 사무치는 외로움에 몸서리 칩니다. 티비 속에 비친 혼자인 모습에 공허함을 느낀 도그는 자신이 비춘 티비 방송에서 우연히 로봇 광고 방송을 보게 되죠, 충동적으로 주문 전화를 넣은 도그에게 다음 날 커다란 크기의 택배박스가 도착하고 도그는 설명서를 보며 조립에 열중합니다. 드디어 완성된 로봇은 해맑은 성격으로 도그와 부쩍 가까워지고 둘은 다른 연인들처럼 데이트를 즐기며 서로에게 둘도 없는 존재가 됩니다. 바다로 피크닉을 나간 둘은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만나며 오랜 시간 이별을 겪게 됩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둘의 관계는 뜻밖의 이야기로 끌려갑니다.
<로봇 드림>은 아주 오랜만에 한국 극장을 찾은 유럽 스타일의 2D 애니메이션입니다. 전체적인 그림의 느낌은 닉툰으로 유명한 니켈로디언이나 <릭 앤 모티>같은 미국 애니메이션을 떠올리게 합니다. 미국 그래픽 노블 작가 사라 바론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영화는 움직이는 그림 자체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활용 방법에 있어서 미국, 일본 2D애니메이션과는 분명 다른 향기를 품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그려진 듯 보이지만 요소요소가 살아있는 배경이나, 필요한 순간에 힘을 발휘하는 조명과 그림자.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표정의 디테일들은 아직 2D 애니메이션이 보여줄 수 있는 바를 충실히 전달합니다. 유화풍의 극사실주의 배경과 특유의 디자인으로 밀어붙이는 미야자키의 그것, 일본 애니메이션의 그것과는 분명히 다른 점이고,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언뜻 캐릭터 상품의 팬시한 느낌을 가진 <로봇 드림>의 그림체는 본격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펼쳐내며 사뭇 무거운 이야기를 선보입니다. 외로움과 관계, 사랑과 이별이라는 재료를 꺼내든 영화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요리를 시작하는데요, <로봇 드림>이 선택한 방식은 비언어와 단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내내 아무런 대사도 전달하지 않습니다. 끙끙거리거나 웃거나 앓거나 휘파람을 부는 등의 감정표현은 있지만 모두 비언어적 표현입니다. 모든 감정과 이야기가 오직 행동으로만 전달되는 무성영화,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떠올리시면 쉽습니다. 이런 비언어적인 표현은 관계와 사랑이 행동에 근거한다는 사뭇 묵직한 메시지를 산뜻하게 전달합니다. 마치 픽사 <월-e>의 전반부처럼 서로에 대한 마음과 관계, 그에 대한 노력을 끝내 몸짓으로 전달하는 두 인물의 모습을 보는 일은 익숙하면서도 신선한 전달력으로 관객의 마음을 두드립니다.
두 번째 방식은 단절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모종의 사건으로 이별을 겪게 된 둘은 여전히 서로에 대한 깊은 마음을 지닌 채 서로를 기다립니다.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의 구절처럼 서로에게 가지만 가지 못하는 애틋함과 거리감을 영화는 어루만집니다. 각자의 시간 속, 단절로 인한 불안과 성숙은 결말에 이르러 사랑에 대한 깊은 속내를 드러내며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매듭짓습니다. 아주 커다란 이야기를 함과 동시에 섬세하고, 사려깊은 동시에 담대히 아름다운 엔딩이었습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좋은 영화는 말로 다 하기 힘든 구석구석이 존재합니다. 극장에서 확인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