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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돌 Nov 10. 2023

우물 안 개구리? 우물 안 가두리?

회사 옮기면 당하는 가스라이팅

살다 보면 새로운 환경으로 이동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회사를 옮기거나, 이사를 가거나. 이민을 가거나. 결혼하는 경우도 물리적인 환경이라기보다는 시댁이나 처가라는 새로운 환경을 맞게 된다.


옮겨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열심히 눈치 보면서 문화나 관행, 절차를 익혀 나간다. 보이지 않는 암묵지적인 관행들이 사실 미묘하게 사람을 힘들게 하거나 바보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예전엔 시집온 며느리가 혹독하게 시어머니로부터 그런 교육을 받았다.


회사를 옮기는 경우에는 같은 팀 내에 선임이나 경험 많은 사수나 선임이 지정되어 새로 입사한 사람들의 소프트랜딩을 도와주는 경우가 많다. 업무적인 중요한 것부터 소소한 것까지, 이러저러한 것을 알려준다.


문제는 이런저런 것을 배우다 보면 도움이 되는 것도 있지만 불합리한 것들도 눈에 띄게 마련이다. 이미 익숙해져 버린 우물 안 개구리들은 그게 잘못되거나 이상한 건지도 모른다. 막 새로 들어온 개구리 눈에만 그런 게 들어오기 마련이다. 이때 문제제기나 질문을 하면 가스라이팅이 시작된다.


"김대리는 새로 와서 잘 모르나 본데, 이건 이렇게 하는 게  훨씬 더 좋은 겁니다. 저희 부서는 그걸 이렇게 처리하고 있습니다. 김대리도 잘 봐 두시기 바랍니다."


아닌 것 같은데...


우물 안 개구리들은 새로 들어온 개구리에게 열심히 우물을 자랑한다. 경우에 따라선 그게 구닥다리인 줄 모른다. 보고문화. 승인절차에서부터 회의문화, 회식 문화까지. 우물 안 개구리들은 자신들의 방식이 최고인 줄 착각한다.




일반 직원이 아니라 고위임원으로 영입되어 가더라도 그런 일이 왕왕 벌어진다.


선임 부서장들이 업무보고를 시작하면서부터 새로 온 상사의 스타일과 역량에 대해 간을 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가스라이팅이 시작된다. 윗사람의 업무에 대한 이해나 부담을 줄여주는 척하면서 사실은 자신이 해오던 방식과 스타일을 그대로 고수하려고 든다.


새로 온 상사가 추진하는 변화나 혁신에 대해서 총론 찬성, 각론 반대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슬슬 견제구를 날리기 시작한다. 새로 온 고위임원이 중심을 못 잡고 헤매거나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면 더욱 신이 나서 가스라이팅을 시작한다. 보고를 통해 승인과 결재는 임원이 하는 모양새이지만 실무적으로 돌아가는 것은 고참부장과 고인물연합이 장악한다.


결국 새로 온 고위임원과 같은 상사는 자신도 모르게 부서나 회사를 대표하는 얼굴마담 역할 - 고객사 미팅, 외부 행사나 직원 간담회 참석 등 - 이나 회식자리에서 건배사하는 정도로 입지가 좁아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판이 돌아가기 시작하는 데도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거나 파악하지 못하는 임원이면 이미 자격 미달...


실제 업무에서 벌어지는 일은 무대 뒤 몇몇 실세들끼리 비밀리에 논의하고 인사와 예산을 쥐락펴락한다. 조직구성원들도 금방 돌아가는 판세를 읽고 눈치를 챈다. 부서장이 아니라 이들 실세들에게 줄을 선다. 이들 실세 고참들은 앞에서는 굽실거리고 용비어천가를 부르지만 속으로는 '얼굴마담 주제에....:하고 생각한다.


브라보. 우물 안 개구리들의 우물 안 가두리작전 성공


이렇게 일이 년이 지나고 나면 영입되어 온 고위 임원은 잘려 나간다. 변화, 혁신. 실적 개선이나 신사업 추진과 같은 중요과제들이 지지부진하고 성과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새로운 임원이 영입되어 오면 처음부터 다시 가스라이팅이 시작된다.


조금 과장되게 이야기하였지만 몇 번 회사를 옮겨 보면서 이렇게 돌아가는 조직, 실제로 보기도 했고 겪기도 했다. 우물 안 개구리도 바보가 아니다. 그들도 저항하기 마련이다. 겉으로 보이지 않지만 격렬하게. 회사 물정 모르는 임원이 와서 공자소리 하면서 한바탕 휘저어 놓으면 어쩔 수..,


그것을 탓할 순 없다. 우물 안 개구리들의 가두리작전에 녹아나지 않으려면 사태를 제대로 파악해서 가스라이팅당하지 않아야 한다. 우물안 개구리를 설득하든지, 우물을 부숴버리고 밖으로 개구리를 내몰던지. 방법을 찾아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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