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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설모 Feb 23. 2024

좋아질 일만 남았어요

구겨진 마음이 펴지는 순간

"치료 방법이 딱히 없어요"


멀쩡히 회사를 다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앉을 수도, 걸을 수도 없게 됐다. 교통사고를 당한 것도 아닌데, 하루 만에 허리가 박살이 났다. 어딘가 크게 잘못된 게 분명하단 생각이 들어서 대형 병원들만 골라 다녔다. 그런데 내로라하는 병원에선 모두 고개를 갸우뚱했다. 치료 방법이 딱히 없고, '가벼운 디스크'같으니 그냥 좀 누워서 쉬란다. 환자 입장에서 가장 듣기 싫은 말이었다.


당시 나의 상태는 심각했다. 5분만 앉아있어도 허리가 무너져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밥도 서서 먹었다. 물론, 서 있는다고 통증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샤워도 5분 안에 끝내고, 누워서 머리를 말려야 했다. 그러나 몇 주간 안정을 취해도 허리 상태는 조금도 나아지질 않았다. 몇 번의 삽질 끝에 김포의 한 정형외과에서 원인을 발견했다. 골반쪽 인대의 문제였다. 쉽게 회복되는 부위가 아니라서, 몇 달로 끝날 줄 알았던 치료는 1년을 넘기고 있었다.


그 당시 매일 겪었던 통증은 허리에서 시작해서 발끝까지 이어지는 통증이었다. 누워있을 땐 은은하게 아프다가 어느 순간 벼락 치는 것처럼 통증이 찾아온다. 그땐 평소처럼 욱신거리거나 뻐근한 느낌이 아닌, 날카로운 송곳으로 살을 후벼 파는 통증이 10초간 이어진다. 그 통증이 시작될 땐 일단 멈추고 이를 악물참을 수밖에 없다. 10초가 지나면, 후벼 팠던 감각은 다시 잔잔한 통증의 상태로 돌아간다. 눈을 꼭 감고 숫자를 세고 있자면,  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다.


'너는 낫지 않을 거야.'

'이 통증은 앞으로도 계속될 거야.'


그것이 내가 겪는 고통의 근원이었다. 순간에 느끼는 아픔의 크기 따위가 니었다. 그것의 밑바닥엔 이 상황이 내일도 이어질 거라는 좌절감이 있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오늘의 고난'이 힘든 게 아니라, '내일도 나아질 것이 없다는 마음'이 나를 죽이는 것이다. 이런 마음은 사람을 끝없는 절망 속으로 끌어당긴다. 


"이제 좋아질 일만 남았네요!"


기대 없이 방문했던 재활 센터의 원장님이 경쾌하게 말을 이어갔다. 나처럼 심각한 환자는 드물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아팠으니 이제 좋아질 일만 남았다고. 아무렇지 않게 툭 건넨 한 마디가 마음을 부수고 들어와서 폭죽을 터뜨렸다. 누군가 내 미래에 대해 확신에 차서 말해주는 행위가 이토록 위로가 되는 줄 몰랐다. '너는 반드시 낫는다'며 대신 선포해주는 사람들의 외침은, 무너지고 있었던 내 발 밑의 지지대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 말대로 됐다. 18개월간 침대에 갇혀서 천장만 보며 지내던 시절이 지나갔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정작 저 말을 건넨 사람들은 기억조차 하지 못할 찰나의 순간들이었을 것이다. 고작 말 한마디였을 뿐인데 있는 틈이 생겼다. 대신 믿어주는 마음들 덕분에 나는 낫기로 '결심'했다. 절망이 누군가의 삶을 망치려고 할 때, 지금까지나는 멋지고 포근한 위로의 말들을 고르고 골랐다. 그러나 이제는 무엇이 필요한지 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위로는 미래를 대신 믿어주는 것이다. 비록 지금 너는 바닥에 있을지라도 나는 이게 끝이 아니란 것을 안다고. 이제 바닥을 치고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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