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 퇴사하려고요. 다들 회사 떠났고 저도 오래 참았어요."
건너편에 앉아있던 오빠가 말했다.
"그래. 그런 말도 있잖아. 이직은 지능순이라고."
아얏...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내가 돌멩이를 맞았다.
나도 한때 '이직은 지능순'이라는 이야기를 밥 먹듯이 했던 적이 있었다. 첫 직장에서 일부 차장님들을 저격할 때 썼던 말이었다. 누구는 일이 너무 많아서 링거 꽂고 열한 시까지 야근을 하는데, 건너편 셀에 있는 차장님은 일이 없어서 종일 뉴스 기사를 보고 있었다. 그땐 그게 더 힘든 일인 줄도 모르고 마냥 아니꼬워했었다. 저럴 거면 빨리 그만두지 왜 뭉개고 있는 거야. 저분들의 새 직장에서 레퍼런스 체크 전화가 오면 엄청 좋은 말 많이 해줘서 빨리 보내야지! 따위의 생각뿐이었다. 세상에서 회사 다니기 제일 싫은 표정으로 꾸역꾸역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죄송하지만) 정말로 한심했다.
그러던 내가 벌써 한 회사에 10년째 몸 담고 있는 '고인물'이 됐다. 어디 가서 10년째 같은 직장에 다니고 있다고 하면 다들 신기한 눈으로 쳐다본다. 그 눈빛의 이면에는 '이직할 능력이 없나?'라는 생각이 있을 수도 있고, '회사가 되게 편한가 보다'라는 추측도 있을 것이다.
나도 처음부터 이럴 계획은 아니었는데. 어느새 10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다. 요즘엔 신입들과 밥을 먹을 때 항상 비슷한 질문을 받는다. '다니면서 퇴사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셨냐'라고. 곰곰이 생각해 봐도, 딱히 떠오르는 모먼트가 없었다. 너무 힘들고 어려운 적은 있었지만, '퇴사해야지'라고 마음먹었던 적은 없다. 내 성격 상, 마음먹으면 바로 실행하기 때문에 그런 순간이 존재했다면 나는 이미 이곳에 없었을 것이다.
처음 이곳에 입사했을 땐, 그냥 막연히 3-4년 정도 다니고 이직해야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때가 가장 이직하기 좋은 연차이기도 했고, 더 솔직히 말하면 비영리 업계에서 오래 일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일을 하다 보니 매일 "새로운 일"을 만들어가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궁극적으로는 어린이들을 살리는 일이 되니, 프로젝트 후에 으레 찾아오는 허무함도 없었다. 비용 때문에, 소통의 오류로, 스케줄 때문에 실행하지 못했던 일들은 다음 기회에 꼭 해보고 말겠단 다짐을 했다. 그렇게 '다음엔 이거 해봐야지', '다음엔 더 잘해야지'를 반복하다 보니 10년이 지났다.
"여기서 하고 싶은 일이 사라지면 퇴사할 거예요."
함께 밥을 먹던 신입사원 앞에서도, 같은 고인물 동료들 앞에서도, 팀장님 앞에서도 했던 말이다. 그리고 다행히(?) 아직까지는 이곳에서 하고 싶은 일들이 남아있다. 그리고 회사도 그걸 지지해 준다. 지난 외부 행사 때, 어떤 동료가 나를 보고 "요즘 쟤 날라다닌다"는 표현을 했다고 한다. 어떤 칭찬보다 기쁜 피드백이었다. 계속 그렇게 썩지 않고 날아다니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여기까지면 됐어."라고 말하며 기쁘게 서랍을 닫게 되는 순간이 올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