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바늘로 콕콕 쑤시는 느낌. 양손으로 끝을 쥐어 잡고 돌려 짜는 느낌. 그러다가 굵은소금으로 벅벅 문대는 느낌. 내 위염 증상은 그랬다. 내시경을 해보니 위벽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위장 사진을 눈으로 마주하니, 더 이상 태연하게 커피를 마실 수가 없었다. 살기 위해 몇 개월간 커피를 끊었다.
스무 살 이후로 커피는 생존템이었다. 점심 먹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마시면 위장에 정체된 음식물들이 싸악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근데 고작 몇 개월 커피를 끊었다고 카페인에 너무 민감한 체질이 되어버렸다.고작 아메리카노 한 잔때문에 새벽 4시까지 잠에 들지 못했다. 평생 먹어왔던 커피인데 이럴 수가 있나 싶어서 며칠을 더 실험해 봤지만 결과는 동일했다. 그제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제 카페인을 마실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인생의 큰 행복 하나를 잃은 기분이었다. 힙하고 핫한 카페에 놀러 가는 일이 나에겐 더 이상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어느 카페에 가든 카페인 없는 음료를 찾는 일이 스트레스가 되었다. 그나마 허브차 같은 옵션이 있다면 감사했다. 맛없는 과일청 음료를 6~7천 원 주고 사 먹어야 하는 날엔 괜히 심술이 났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되는 디카페인 커피는 뭔가 텅 빈 맛이 났다.
커피의 대체제를 찾지 못하고 유목민으로 살다가, 홍콩으로 여행을 갔다. 그곳에선 끼니마다 뜨거운 우롱차를 줬다. 깊고 진한 육수가 줄줄 흐르는 딤섬을 먹고 나면, 개운한 우롱차가 느끼함을 싸악 씻어줬다. 푹푹 찌는 한낮엔 홍차에 레몬 슬라이스를 넣고 얼음과 시럽을 넣어 빙글빙글 말아주면 근사한 똥랭차(아이스티)가 됐다. 카페인을 먹으면 아예 안 되는 줄 알았는데 차에 들어있는 카페인 정도는 숙면에 방해가 되지 않았다. 어떤 음식점에 가도 곁들여먹는 차가 너무 맛있어서, 귀국길에 보이차와 우롱차를 왕창 샀다.
그렇게 새로운 맛의 세계를 경험하고 나니, 서울에도 멋진 찻집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대익차 매장에 가서 보이차 생차와 숙차의 차이점을 배우고, 서울숲 전경을 바라보며 말차를 마셨다. 집에서도 잎차를 마시고 싶어서 표일배를 샀고, 공도배니 개완이니 하는 다기 쇼핑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카페인이 걱정되면 처음 우린 찻물을 버리면 되고, 날씨가 더워지면 홍콩에서 먹었던 것처럼 얼음에 레몬을 추가해서 먹으면 되는 거였다. 나, 커피 없이 살 수 있잖아?
뜨거운 물에서 동글동글 원을 그리며 조금씩 퍼지는 찻잎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몸까지 노곤노곤해지는 기분이 든다.커피 원두를 고르듯이 그날 기분에 따라서 찻잎을 고르는 재미도 있다. 네스프레소에서 신상 캡슐이 나왔다더라, 망원동에 맛있는 에스프레소 바가 생겼다더라 하는 소식은 이제 남의 이야기가 됐다. 취향은 이렇게 반 강제적으로 변하기도 하나보다. 그나저나 앞으로지갑을 잘 사수해야 할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드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