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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설모 Jul 04. 2024

선물이 왜 필요하니

너한테 선물은 사치잖아?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부리또처럼 이불에 말려서 엄마 품에 안겨있던 것이다. 너무 편안해서 자꾸 졸렸던 기억이 있다. 그다음으로 오래된 기억은 내가 '분리수면'을 시작했을 때다. 엄마 아빠는 번갈아가며 고개를 빼꼼 내밀어서 내가 잘 자고 있는지 확인했다. 나는 그 '빼꼼'을 보는 게 재밌어서 안 자고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었다. 막 한글을 배웠을 무렵엔 외삼촌이 자꾸 나를 데려다가 책을 읽게 시켰다. 어려운 책도 읽을 줄 아냐면서 계속 어른들 책을 가져왔는데, 속으로 '어차피 똑같은 한글인데 왜 저래' 하면서 삼촌을 비웃었다. 

너무 읽어서 표지가 너덜너덜해진 동화책도 기억난다. 가출한 아기 비행기의 이야기였는데, 엄마가 읽어줬던 "안돼 안돼 너는 너무 어려서 안돼~"라는 대사가 한때 우리 집의 유행어였다. 5살 땐 큰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 자체는 기억이 안 나고, 수술실에서 막 나왔을 때 '우리 애기 어떡해'하며 왈칵 울던 이모의 표정이 기억난다.

인천 할머니댁에는 큰 평상이 있었는데, 거기서 모기향을 피워놓고 수박을 먹으며 구구단을 외웠었다. 7단이 잘 외워지지 않아서, 할아버지랑 같이 7단만 계속 반복했다. 증조할아버지 생신 날엔 옆자리를 차지했다. 할아버지 귓볼을 막 만지다가 엄마에게 혼이 났는데, 할아버지가 스윽 몸을 기울고 다시 귀를 내밀어주셨다. 벽제에선 외할머니와 구역예배를 다녔다. 할머니들이 모여 찬송가를 부르고 있으면 옆에서 요구르트를 촙촙 빨아먹다가, 성경을 읽는 시간이 되면 할머니 무릎에 누워 잠이 들곤 했다.

엄마는 가끔 도넛을 만들어주셨다. 대단하지 않은 모양새였지만 갓 튀긴 도넛이 너무 맛있었다. 금도 엄마에게 그 얘기를 종종 하는데 레시피를 잊어버리셨단다. 초딩때는 폭우가 쏟아지던 날, 아빠와 밖에 나가서 맨발로 비를 맞으며 뛰어놀았다. 어른의 허락 아래 금기된 행동을 하는 게 너무 짜릿했던 시간이었다.


핵심 기억들을 돌아보니, 별로 특별할 것이 없는 에피소드들이다. 한 가지 공통점이라면 전부 사랑받았던 기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2'에선 이런 기억들이 모여 라일리의 성격과 신념을 만들어낸다. 어릴 경험하는 작은 에피소드들이 모여서 사람의 인격을 형성한다는 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공감하는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 대상이 내 아이가 아니라 '후원 어린이'가 되면 판단의 잣대가 달라진다. 몇 년 전에 어느 사회복지센터에 접수된 민원이 있었다. “점심 먹으러 갔다가 기분 잡쳤다. 굳이 돈가스를 먹어야 할 일이냐. 둘이 와서 하나를 나눠 먹는 것도 아니고 한 메뉴씩 시켜서 먹고 있더라. 내 세금으로 낸 돈이….” 기초생활수급을 받는 어린이가 돈가스를 먹는 걸 보고 한 시민이 항의를 했다고 했다. 온라인에 이런 글이 올라온 적도 있다. 매월 5만 원씩 후원하고 있는 아이에게 원하는 걸 말해보라고 했더니 아이가 '비싼 패딩'을 요구했단다. 후원자는 황당함과 분노를 느꼈다고 했다. 심지어 그 아이는 피아노 학원에도 다닌다며. 그다지 사정이 어렵지 않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우리 기관에서도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어린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후원 사업이 생기기도 하고, 매년 크리스마스에는 후원을 받는 모든 어린이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선물을 받을 수 있도록 크리스마스 선물금을 따로 모금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의 눈에는 이것이 '사치'의 영역으로 비칠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한다. 실제로 이런 주제들은 모금하기가 참 어려운 영역이다. 당장 오늘 먹을 것이 없다는 아이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가르치는 행위는 그다지 중요하지도, 시급해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오늘 먹는 밥 한 끼보다 바이올린 수업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사랑받은 경험,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누려본 경험은 이 아이들이 자신의 힘으로 가난을 이겨낼 수 있는 중요한 근육이 된다.  어린 시절만 돌아봐도,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것은 많은 어른들이 살뜰하게 챙겨준 사랑 덕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아이들도 '상한선 없이' 최대한 다양하고 많은 경험들을 하길 바란다. 당장 내일 먹을 것이 없어도 오늘 컴퓨터 수업을 듣고, 친구들과 브이로그를 찍어보고, 베이킹을 하고, 피아노를 배워보길 바란다. 우리가 이것을 감히 '주제넘은 행복'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


훗날 내 후원어린이가 어린 시절을 돌아봤을 때, 이런 고백을 하면 기쁘겠다.

'그때 후원자한테 선물 받은 신발이 참 예뻤지.'

'피아노 첫 수업에서 내 연주를 듣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한 선생님 얼굴을 잊을 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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