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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임을 잃지 않으려면

by 청설모

친구와 창가에 비스듬히 기대어, 떨어지는 은행잎을 바라보며 수다를 떨었다. 어쩌다가 트로트 이야기가 나왔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우연히 내가 송대관의 어떤 노래를 따라 했고, 친구는 고장 난 트랙터처럼 덜덜 떨면서 웃었다. 친구의 웃음소리는 옆에 있던 나에게도 번지고, 결국 교실 전체에 퍼져서 온 동네가 웃음바다가 됐다. 낙엽만 굴러가도 꺄르르 웃던, 반짝반짝한 여고시절이었다.


나이가 들어도 짝이는 에너지를 유지할 순 없는 걸까? 최근 유튜브를 보다가, 얼마 전에 데뷔한 아이돌의 영상을 봤다. 모든 게 낯설고, 새롭고, 재밌어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이 그들의 얼굴에 녹아있었다. 본인들이 찍은 뮤직비디오를 보고 발을 구르며 신나 하거나, 사소한 선물을 받아도 입이 찢어져라 좋아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신인의 맛'을 느꼈다.


데뷔 10년 차 아이돌을 좋아했던 나에게 이 아기들의 모습은 꽤 낯설었다. 모든 게 능숙하고, 여유로운 우리 오빠들과 달리 이들은 지금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인생의 새로운 콘텐츠인 것이다. 뭐만 시켜도 "나한테 맡겨! 자신 있어!" 이러질 않나. 자기들끼리 안무 짜보는 것도 너무 씬나고, 구성을 기획하는 것도 즐겁고, 시안 영상을 찍고 편집하는 것도 진심으로 기면서 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젊음이란!

래서 많은 누나들이 어리고 반짝반짝한 아이돌을 파는 것일까. 그렇다면 미 늙어버린(?) 우리 오빠들은 어떻게 살아가란 말인가. 히 데뷔 10년 차 아이돌에게 자아의탁을 하 되며 씁쓸하고 서운한 감정이 번지기 시작했다. 흥, 이래서 다들 청춘 청춘 하는구나. 음을 유지하기 위해 식초에 진주를 갈아 마셨다는 클레오파트라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다가 최근 청룡 영화제에서 화제가 된 구교환의 수상소감을 보게 됐다. 그는 수상소감에서 '연기를 했다'

직접 콘셉트와 연출, 시나리오까지 만들어, 2분 40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 자신만의 단편 영화를 찍었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두고 '반짝인다'라고 말했다.

자기의 일을 너무너무 사랑해서 저렇게 눈이 반짝이는 사람을 어떻게 안 좋아해. 젊음이 반짝이는 게 아니라, 눈빛이 그 사람을 반짝이게 만드는 거였구나. 반짝임은 나의 겉모습이 아니라 감정의 온도였구나. 것은 결국 삶을 계속 사랑하려는 사람에게 생기고, 사람을 이해하려는 사람에게 머물고,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에게 오래 남는 것이겠구나.


그러니 더 이상 굴러가는 낙엽에도 웃던 과거를 그리워하지 말아야겠지. 청춘이 지닌 반짝임을 질투하는 대신, 내 안에서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들을 계속 찾고, 소중히 여기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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