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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석 Apr 26. 2021

밤이 커다랗게 피어 있다

릴케의 시와 함께 걷는 프라하

프라하는 늘 생기가 넘치는 도시다. 거리에 붉은 트램이 오가고, 길 위에서 예술가들의 음악과 동작이 하나하나 빛난다. 거리 곳곳에 숨겨진 신화와 낭만은 이야기가 되고 글로 남는다.오스트리아의 문인으로 잘 알려진 릴케는 사실 이곳,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때문에 그의 시에도 종종 프라하의 풍경이 등장한다.      



프라하에 들어서서 친구와 맥주 한 잔을 즐기던 날, 릴케가 남긴 시처럼 프라하의 하늘에는 밤이 피고 있었다. 주홍빛으로 하늘이 물드는- 밤과 낮 사이의 묘한 풍경을 릴케는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어느새 프라하의 하늘 높이 

밤이 커다랗게 피어있다. 꽃받침같이

나비 같은 햇살은 그 휘황한 빛을

꽃으로 핀 밤의 서늘한 품에 감추었다.


<밤에> 中



여행자들이 모두 모이는 프라하에서는 언어의 국경을 찾기 어렵다. 그만큼 다양한 국가에서 온 여행객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 도시의 하루를 즐긴다. 그러나 프라하에 지는 노을과, 도시를 덮은 주황색 지붕을 바라볼 때엔 모두의 시선이 한 곳에 겹친다. 도시를 찾은 모든 이들은 꼭 한번은 까를교를 건너고, 다리 위의 음악을 듣는다. 까를교 위를 지나는 철새들의 움직임에 다같이 탄성을 내지른다.      



이러한 도시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일까. 릴케는 여러 국가를 오가며 글을 남겼지만 어느 국가에서든 그만의 언어를 남겼고, 그의 시는 어느 국가에서든 여전한 울림을 준다.                 



말의 국경이 어딘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 말의 나라에는 귀담아듣는다.

산비탈에 울리는 쇠스랑 소리

작은 배들의 목욕하는 소리

그리고 바닷가의 고요를


<때때로 나는 두려움에 떨면서> 中



프라하에 밤이 찾아오면 바츨라프 광장을 비롯한 거리의 곳곳은 예술가들의 무대가 된다. 익숙한 솜씨로 관객을 모으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서툰 솜씨로 세상에 첫 연주를 공개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발길을 멈춘 곳은 현악기를 켜는 두 남녀의 앞이었다. 사람들이 동그랗게 모여 음악과 함께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두 남녀는 시선을 주고받으며 박자를 맞춘다. 조용히 그들의 손끝에 집중하는 관객들의 눈에서 빛이 나고 있었다. 프라하의 밤을 향해 여행객들은 원형으로 줄지어 선다.                 



그 정원의 소리 없는 빛 속에

원형으로 줄지어서 꿈이 춤추고 있다.

누가 바이올린을 켜는지 너는 모른다.


<밤은 검은 도시처럼 자라난다> 中



프라하성으로 오르는 길은 수많은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프라하가 연인의 도시라 불리는 이유를 보여주듯, 손을 잡고 한 칸씩 위로 향하는 사람들이 자주 보였다. 강을 건너 프라하성까지 바람이 세차게 불어올수록 그들 사이의 간격은 좁아진다. 릴케는 겨울이 봄이 되는 마치 기적과 같은 변화도 결국 나란히 걷는 두 사람 사이에서 시작된다고 노래했다. 프라하성에서 내려다보는 이 야경도 함께하는 동행이 있어 한층 더 따뜻하게 반짝인다.                 



쌀쌀한 도시에서 

손을 잡고서

나란히 둘이 걷는 사람들만이

언젠가 봄을 볼 수 있게 되리라.


<수많은 기적을 일으키는> 中



비눗방울 사이를 뛰어다니던 아이들은 간데없고, 바쁘게 빵을 굽던 이들도 떠난 늦은 밤. 구시가지 광장에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시계탑을 비롯해 오랜 시간을 견딘 첨탑들이다. 그 가운데 광장을 배경으로 하벨은 단단하고 날선 글로써 혁명의 한 장을 장식했고, 카프카와 릴케는 아름다운 글을 남겼다.   


   

모든 여행객에게 새로운 방랑도, 만남도 허락되지 않는 시기를 맞이하며 프라하의 광장에도 많은 이야기가 잠들지 모른다. 그러나 프라하를 배경으로 활동한 많은 문인들은 그들의 글 속으로 새로운 여행을 안내한다. 프라하가 그립다면, 혹은 낯설지만 꼭 한번 가고 싶은 당신이라면 그들의 글로 이 도시를 산책해보는 것은 어떨까.                 



동화라는 동화가 모두 되살아난 것같이 온화하다.

여기저기 탑에서 많은 시간이 묵직하게 떨어져서

마치 바다 속에 가라앉듯이 밤의 어둠 속에 가라앉는다.


<달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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