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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민씨 Aug 31. 2019

문득,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

언젠가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스무 살 무렵 우리가 가장 쉽게 하게 되는 착각 중 하나는,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과 영원히 함께일 거라 생각하는 것이다.'

스무 살 무렵, 나도 그런 착각을 했다. 하지만 그 시절 매일 붙어 다니던 친구 중 지금은 연락조차 안 되는 친구도 있다. 물론 그 시절 친구 중 지금도 가깝게 지내는 친구 또한 분명 있다. 하지만 그 또한, 조금은 다른 관계로.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과 영원히 함께일 거라는 생각'은 착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과 영원히 연락하며 지낼 거라는 생각'은 이뤄질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과 영원히 지금과 같은 관계로 함께일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 맞다.
    
사람은 변하니까. 상황은 달라지니까. 그렇게 관계 또한 달라지니까.

<나는 다만, 조금 느릴 뿐이다> 중


나는 종종 들뜨게 하는 우정을 갖게 될 때면 두 생각을 같이 할 때가 있다. '이 만남이 오래갔으면 좋겠다', '이 만남은 얼마나 갈 수 있을까?'. 우정은 한 사람의 노력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두 사람이 노력했다고 계속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각자의 상황과 그때의 마음에 따라붙어 있을 수도 있고, 잠정적으로 멀어져야 할 수도 있다. 모든 인간관계에 대해 어떤 저항할 수 없는 지점을 인식한 뒤로 두 생각을 같이 하게 된 듯하다.


그럼에도 '사랑'에도 그러하듯, 사람은 쉽게 지금 막 샘솟는 감정의 영원성을 희망하게 된다. 이렇게 잘 맞는 사람들이 있을까 하는 마음이 생길 때면 더욱 그렇다. 미래를 현실적으로 생각한다고 해도, 막연한 환상과 구분되기 어려운 시나리오를 그릴뿐이다. 동시에 또 그렇게 썼던 시나리오가 우스울 정도로, 이름도 얼굴도 잘 떠오르지 않게 된 시들은 우정들을 생각하면 마냥 회의적으로 보기 쉽다. 


'그래도, 그래도 이 친구들은 달라' 했던 친구들도 크게 다르지 않던 경험을 한 뒤로 생각이 하나로 모였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지금 할 수 있을 때는 진심으로 잘 대하기로. 어떤 환경의 변화로 달라진다면 그건 그거대로 어쩔 수가 없는 거니 받아들이기로.


삶도 마찬가지겠지만 현재만 살 수 있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지금 잘 지내는 것일 테다. 괜한 환상에 빠질 것도, 염세에 빠질 것도 없다. 섭리가 닿는다면 다시 만날 것이고, 인연이 아니라면 언젠가 멀어질 것이다. 


위에 인용한 책은 6년 전에 페이스북에 옮겨 두었던 글이다. 그리고 그 댓글에 2명이 댓글을 달았는데, 그들과는 인연이 말라 버린지 꽤 됐고, 페이스북을 둘 다 지워 버려서 무슨 내용으로 썼는지 사라져 알 수 없게 됐다. 정황상 한 명은 내 글을 보고, 몇 년 만에 안부를 댓글로 물었는데, 우리는 그 뒤로 안부를 묻지 않았던 것 같다.


오늘 지하철을 탈 때 노약자석 쪽에 서 있게 됐다. 내 앞에는 할머니 두 분이 앉게 되었다. 맨 끝자리에 엄마와 12개월 된 아기가 있었는데(한 할머니가 물어보셨다), 두 분 다 아이에게 까꿍 하면서, 아이의 귀여움을 두 분이서 이야기하면서 친해지셨다. 한 6 정거장 가는 동안 두 분은 짧고 굵게 이야기를 나누셨다. 고향이 어디고, 지금은 어디 살고, 앞으로 어떻게 지낼 것인지를. 그러다 어떤 포인트 혜택을 이야기하다 서로 이름, 전화번호 거기에 생년월일까지 적어갔다. 책 읽으며 드문드문 들린 거라 맥락은 모르지만 둘은 그런 사이가 됐다. 나이 차이는 한 10살 정도 났다. 두 분이 앞으로 어떻게 더 이어질진 모르겠지만, 그렇게 한 관계가 생겼다.


관계는 어쩌면 그냥 그렇게 사라지고, 생기는 것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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