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남은 문장들
목사님과 오랜만에 카페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 나이가 나이인지라(?) 얘기의 주제는 대부분 연애였다. 나는 갈수록 사람 만나는 게 쉽지 않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예전에 봤던 걸 이제는 안 보기도 하지만, 그 반대로도 그랬다. 나이 들어가는 만큼 봐야만 하는 것들이 더 생기고 있었다. 기준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했지만, 내 기억에 남는 한 마디가 있었다. 결혼할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나온 걸로 기억한다.
"채민아, 애정을 우정 위에 쌓는 게 중요해. 서로의 가장 친한 친구가 서로일 때 관계가 오래, 건강하게 갈 수 있어."
작년 여름, 올해 여름 가장 많이 들은 곡 중에 세 손가락 안에 들 곡을 꼽으라면, 잔나비의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을 뺄 수 없다. 1집의 다른 곡들은 그때 나에겐 큰 매력을 주지 못 했다. 그래서 계속 1곡만 반복해서 듣고 있었다. 콘서트를 갈 수도 있었지만, 1곡만 들으러 가기에는 무리라고 생각해 안 갔다(그때 꼭 갔어야 했었는데).
알음알음 잔나비 이름이 알려지던 중 2집 앨범이 나오자 그들의 인기는 대폭 올라가기 시작했다. 커버부터 마음에 들었던 나는 그 앨범을 듣자마자 빠져들었고, 그제서야 잔나비 '팬'이 되었다.
1곡에만 꽂혀 있을 때는, 누가 물어보면 잔나비를 안다고 할 수 있고, 좋아하는 곡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팬이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멤버가 누가 있는지, 이들의 이름이 왜 잔나비인지 이런 것들이 전혀 궁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1곡만 좋아한 거니깐. 2집이 나오고 나서는 이들 자체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커버를 누가 그렸는지도 찾아보고, 커버를 그린 분의 드로잉 수업을 듣기도 했다. 그들의 앨범을 사기 시작했고, 그들의 전체 음악을 듣게 됐다.
애정과 우정의 직접 연결은 아니지만, 둘을 비교해 설명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첫눈에 반하거나, 둘이 눈이 맞아서 사랑을 시작했을 때는 모든 게 잘 맞을 수 있다. 잘 맞춰 갈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애정의 느낌에만 집중하다 우정을 쌓는 데 소홀해지면, 처음에 치솟았던 애정이 조금 잠잠해질 때 무너지기 쉽다. 1곡만 좋아했는데 그 곡에 질려서 안 듣게 되면 결국 그들의 노래 전체를 안 듣게 되는 것처럼.
이성적으로 좋을 때와 그냥 그 사람과 있으면 재밌는 건 좀 구별해서 볼 수 있다. 서로 끌리지만 합은 안 맞을 수 있다. 요새 내 나이 또래인 친구들과 이야기하면 많이 원하는 것 중 하나가 '유머 코드'이다. 서로 드립 던지는 게 잘 맞거나, 어떤 노래가 흘러나올 때 비슷한 포인트에서 같이 흥얼거리거나. 처음에 안 맞아도 같이 맞춰갈 수 있지만, 애초에 결이 안 맞는 사람이 있지 않던가. 그게 안 맞으면 사랑이 안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게 맞을 때 더 좋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한 친구는 그걸 '쿵짝'으로 표현했다. 둘다 '쿵'하면 안 맞는다고.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야구, 특히 같은 팀이길 바란다. 연인끼리 꼭 야구장을 안 와도 되고, 친구끼리 야구장을 가도 되는 거지만,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자신이 좋아하는 걸 공유하길 바란다. 정 안 맞으면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는 걸로 마무리하지만, 맞았을 때 좋은 건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각자가 좋아하는 것, 재밌어하는 것들의 교집합이 넓을수록 둘의 관계는 애정에만 기대지 않아도 될 수 있다.
어려운 점은 아는 사이에서 만나든, 소개로 만나든 애정을 우정 위에 쌓는 자체이다. 소개로 만났을 때는 시작부터 애정에 강조점을 두고 만나기 때문에 우정을 쌓기가 오래 걸릴 수 있다(설령 만나서 코드가 통할 지 이리저리 견주어 본다 해도, '쿵짝'은 실제로 만나봐야 아는 거니까). 잘 맞는 사람끼리 갑자기 서로 눈이 맞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고. 하지만 어려운 만큼 넘어갈 수만 있다면 가볍게 생각만 해도 설렐 관계가 될 수 있겠지.
그러니 이 어려움을 넘어가려면 우정이 있는 사이를 다양하게 잘 만드는 게 필요해 보인다. 그 다음 거기서 애정으로 넘어가는 것. 또는 애정으로 시작했다면 우정의 기반을 함께 미리미리 잘 쌓아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평소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미리 정리해두고, 자주 표현하면 좋은 인연을 만날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간 쿵짝이 잘 맞을 짝을 찾을 수 있겠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