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민씨 Jul 02. 2022

그 음식점을 다시는 안 가고 싶게 만드는 순간들

길었던 재택근무가 끝나고 회사로 복귀했다. 매일 12시면 고민이 시작된다. 오늘은 또 어디서 밥을 먹어야 할까? 이제는 갔던 곳보다 새로운 곳을 가자며 안 가봤던 곳을 찾아다녔다. 그 주에 갔던 식당은 저녁을 포함해 다섯 곳 정도 됐다. 각각의 식당마다 인상적인 서비스 순간들이 있었다. 고객에게 깊은 인상(좋은, 안 좋은 것을 포함한)을 남기는 것은 순식간이다. 


내게 '여기는 정말 별로다'와 '여기는 정말 괜찮다'란 생각이 드는 기준은 의외로 맛보다 서비스다. 요즘처럼 요리에 대한 정보가 잘 정리된 때에 맛이 없기도 쉽지 않으니깐. 


1. 물 새거 없는데요?

점심에 제육볶음을 주로 하는 가게에 들어갔다. 1층에는 만석이어서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서빙하는 분이 혼자 계셨다. 테이블 곳곳에 이미 먹은 지 한참 된 것 같은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우리가 올라온 걸 보셨음에도 오지 않으셨다. 메뉴판이 없어서 직접 다른 테이블에 있던 걸 가져왔다. 테이블을 치워주실 때 테이블에 있던 물이 거의 없고 미지근하길래 '물 새 걸로 가져다주실 수 있나요?'라고 했다. 돌아온 답변은 '물 새거 없는데요..?'라고 하셨다. 그 말에 같이 앉았던 사람들이 모두 서로를 동그랗게 뜨며 쳐다보게 됐다. 나는 '아 그럼 여기는 물이 없는 건가요!?'라고 되물었는데 그제야 답변 없이 어디론가 사라지셨다가 찬 물이 채워진 물통을 가져다주셨다. 

음식점에서 물이 없을 리가 없으니 '바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또는 '네' 한 마디만 했어도 괜찮았을 일이다.


2. 벨이 눌리면 3분 뒤에 오는 곳

저녁에 퇴근 후 남은 직원들끼리 고기를 먹으러 갔다. 자주 갔던 프랜차이즈 고깃집 말고 다른 데를 찾아봤다. 평소보다 3분 정도 더 걸었지만, 평이 많은 곳이었기에 기대하며 갔다. 강남에서 제법 넓은 데다 2층으로 된 고깃집이기에 굉장히 잘 되는 곳이구나 생각했다. 사장님으로 보이는 분이 카운터를 보고 계셨는데 굉장히 능숙하게 손님들의 오고 가는 과정을 관리하셨고 틈틈 얼마나 남았는지 먼저 말씀해주셨다. 잘 되는 곳의 사장님이라 고객이 뭘 생각하는지 바로 캐치하시는구나 싶었다. 


20분 정도 기다린 끝에 들어갔다. 넓은 고깃집에 사람이 많이 차있어서 구석 끝으로 들어가게 됐다. 우리가 앉은 곳을 담당하는 서버는 2명이었다. 1명은 매니저급으로 보였는데, 다른 1명에게 이것저것 지시하면서 종횡무진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다른 1명은 외국인 분이었는데 수습 중이라는 명찰을 달고 있었다. 처음에는 주문에 문제가 없었다. 


고기를 먹고 고기와 함께 먹을 냉면을 시키기 위해 벨을 눌렀는데 1분 동안 아무도 오지 않았고 반응도 없었다. 다시 1번 눌렀는데도 아무 반응이 없어서 재차 눌렀는데 '네 가요~' 하고 1분 동안 오지 않았다. 다시 1번 누르고, 아예 찾아가서 불러야 할까? 고민하는 중에 외국인 서버 분이 오셨다. '물냉면 하나 주세요'라고 해서 기다리는데 5분 뒤에 매니저 분이 오셔서 '뭘 시키셨나요?'라고 물으러 오셨다. 결국 고기와 물냉면을 함께 먹는 것은 포기하고 물냉면만 먹게 됐다. 특이하게 식초와 겨자가 오지 않아서 여기는 맛에 자신이 있구나, 그냥 주는 걸 먹으라는 거구나 싶었다. 그런데 건너편 테이블을 보니 물냉면을 먹고 있는데 겨자와 식초가 있었다. 결국 벨을 눌렀고 (1분 뒤에) 매니저 분이 오셔서 겨자와 식초를 주는 건지 물었는데 이 분도 별다른 대꾸 없이 그냥 다른 테이블에 있던 걸 가져다주셨다.


사장님은 구석 테이블 쪽에서 서비스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꼭 아셨으면 했다.


3. 검은 물이 떨어지는 고깃집

점심을 시키면 계란후라이를 줘서 왠지 가성비 좋게 느껴지는 곳이 있어서 갔다. 여기도 1)처럼 2층이어서 올라갔다. 반찬이 나오고 고기를 먹고 있는데 테이블 위에 검은 물이 떨어졌다. 같이 갔던 분이 '하...' 한숨을 내쉬면서 휴지를 여러 장 집어 들었다. 테이블 위에 있던 닥트 속을 살짝 닦았는데 그 휴지에 검은 덩어리들이 잔뜩 묻어 나왔다. 고깃집 알바를 해봤기에 이 상태는 진짜 위생을 신경 안 쓰는데라고 했다. 밥 먹는 중에 물이 또 떨어지지 않기 위해 좀 더 닥트 안을 닦은 채 먹었다. 


그곳은 뭔가 끈적거렸고 물맛도 오래된 얼음을 녹인 맛이었다. 결국 다음 날 우리는 모두 탈이 났다는 걸 알게 됐다.


위생에 문제가 있는 음식점은 정말 시급히 개선해야 할 것이다.


4. 반찬은 저 멀리에 두는 곳

이 날은 혼자 밥을 먹었던 날이다. 차돌 된장찌개를 시켰다. 중간에 다른 손님이 뭔가 서비스에 대해 읊조리는 걸 듣게 됐는데, 이어폰을 끼고 있어서 자세히 들리진 않았다. 음식이 나와서 가져다주시는데 내 자리를 반대로 아신 건가 싶을 정도로 멀찍이 두셨다. 아래 사진은 생각 없이 밥과 찌개를 내 쪽으로 당기다가, 반찬을 둔 위치가 웃겨서 찍어두었다. 실제로는 찌개와 밥 모두 건너편에 있었다. 


음식 놓는 것은 아주 기본이지만 직원이 그 기본을 지키고 있는지 점검해봐야 한다.
찌개와 밥도 원래는 저 멀리에 있었다

5. 군계일학

위 사례들과 대비되는 사례가 하나 있다. 원래 자주 가던 부대찌개 집이 있었다. 그날은 그곳 말고 다른 부대찌개를 처음 시도해보기로 했다. 입구에 음식을 먹고 나면 아이스크림을 준다는 말이 있었다. 별 것 아닌 말일 수도 있는데 더운 날이었기에 우리는 그 말에 넘어가서(...) 조금 기다리다가 들어갔다. 


사장님이 카운터에서 적극적으로 응대하시고, 자리에 앉을 때부터 나갈 때까지 우리 테이블은 물론 전체 테이블을 주기적으로 돌아보면서 바로바로 다른 직원들이 응대할 수 있게 지시하셨다. 그리고 다른 직원들도 굉장히 기민하게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여기는 물이 없다고 하자 '바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하고 빠르게 물을 가져다주셨다. 부대찌개를 간단하게 조리해야 하는 과정이 있었는데, '이거 이제 하면 되나?'라고 우리끼리 나지막하게 말하자마자 직원 분을 여기로 보내셔서 직원 분이 조리를 해주셨다.


그러고 나서 나올 때는 다 같이 아이스크림을 들고 나왔다. 그 후로 그 근처를 점심 시간대 지나다니면 아이스크림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자주 보이게 됐다. 

나는 강경 민초파이다.. 


사실 위에 언급된 사례들은 고치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서버 분들이 조금 더 적극적인 태도만 갖춰져 있어도 안 일어났을 일이다. 물 하나 가져다주는 것, 반찬 하나 앞에다 두는 것, 닥트를 자주 닦는 것, 벨이 울리면 바로 반응하는 것 중에 어려운 것은 없다. 그런데 고치지 않고 뒀을 때에는 지속적으로 업보가 쌓이게 된다. 


1) 가게 음식의 맛은 어느 정도 괜찮게 나온다면 그다음부터는 음식 외에 고객 경험이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집중해야 한다
2) 사장님은 1층에만 있지 말고 2층에서 서빙이 어떤 식으로 되고 있는지 체크해야 한다
3)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서라도 현재 서비스가 어떤 상태인지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
4) 직원 전체의 서비스 실력을 기르기 위해 다방면으로 고심해야 한다


당연한 소리일 수 있는 위 단계를 무시해도 이 근처 직장인들은 대부분 갈 것이다. 그러나 조금씩, 천천히 줄어들 것이다. 입소문이 날 정도로 맛있지도 친절하지도 않으니깐. 반대로 맛은 물론 고객의 기분까지 생각하는 곳은 천천히 늘어날 것이다. 거기 갔다 오면 괜찮은 기분이니깐.

작가의 이전글 우리에겐 그런 사이가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