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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Apr 06. 2024

작가에 대한 생각


작가가 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한다. 글과 나의 관계성에 대한 사람들의 추론은 맥락에 따라 달라져 나는 등단을 희망하는 습작생이었다가, 독립 출판사에서 책을 발간하고 싶은 사람이었다가, 글을 쓴다는 행위를 이행하기 때문에 작가가 되곤 했다. 그들의 경우 등단을 하여 문단에서 활동하는 신인이 되기도, 독립서점 한 켠에 본인이 쓴 책의 자리를 마련해 내기도, 쓰는 행위를 계속해나감으로써 작가의 정의를 충족시키기도 했으며, 대개 함께했던 시간과 공간의 효력이 다하며 우린 각자의 고유한 궤도로 자연히 옮겨가게 되었고 안부를 묻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누군가 그들 삶의 한 장면에서 문득 나 혹은 내 글의 향방을 궁금해하는 상상을 한다. 나는 겨울을 서러운 계절로 만든다는 신춘문예에 글을 보내본 적이 없다. 등단 문인의 합평을 받으며 글을 완성하고 함께한 참여자들의 글을 모아 독립 출간물을 내는 우연한 기회를 얻어 인쇄된 지면에서 내 글을 보는 생소한 경험을 하기도 했으나, 내 몫으로 주어진 세 권의 책 중 두 권을 일기장과 함께 몰래 버렸다.


이 글은 언젠가 존재했던 나의 파편이야, 시냇가의 반짝이는 조약돌 같기도, 뜨겁고 끈적이고 새까만 타르 같기도 한. 보아, 나를 통과한 추악한 마음의 모양을, 어둠 속에서 너의 뒷모습을 훔쳐보는 연약함을.


지금껏의 나를 누가 작가라고 부른다면, 아니, 사실, 나를 아는 누군가 내 글을 읽기라도 했다면, 나는 그로부터 최대한 멀리 도망쳐 잊히기 위해 발버둥 치거나, 그렇지 못하다면 어쩔 수 없이 슬그머니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게 될 것 같다.


등단은 가끔 욕망하고 싶은 타인의 욕망이었다, 실상 한 번도 간절히 염원한 적은 없으면서도. 내가 선망한 건, 아마 나의 오해에서 비롯되었을, 정돈된 글에 나타난 담담한 단단해 보이는 그들의 삶에 대한 태도에 가깝다. 외로운 마음, 그리운 마음, 참을 수 없는 마음, 그 어딘가를 서성이든 모든 형태의 불완전한 마음들을 끝내 응시해 내는 태도 말이다.


왜 나는 계속 어떤 표정을 잊지 못하고 같은 순간으로 되돌아가는지 내게 묻는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괜찮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 보이는 이들이 빠르게 내 곁을 스쳐 지나갔고, 나는 익숙한 듯 편안하게 글 곁으로 돌아온다. 그리곤 이미 육신은 죽어 없어진 이들이 남긴 글을 읽으며 우리의 영혼이 교감하는 듯한 기분을 만끽한다.


그러며 문득 글을 남긴 이와 글을 쓰는 이의 세계는 모종의 자폐성이 있는 게 아닌가 의심한다. 작품이란 실상은 사회의 반영이 아니며, 실체를 가진 이들이 빠르게 질주하는 동안 유영하는 영혼들이 남아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본 파편들을 새겨놓은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런 마음이 들면 더욱 애틋한 마음이 생겨, 그들을 기꺼이 내가 사랑하는 작가라고 명명하고 끌어안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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