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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Jun 08. 2024

비와 오후의 빛


날씨가 변화무쌍하다. 뙤약볕이 내리쬐는가 싶더니 곧 폭풍전야처럼 하늘이 어두워지고, 바람이 불다가 비 없이 천둥만 친다. 방의 불을 끄면 너무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흐린 날의 빛이 상아색 커튼을 통해 들어온다. 방 안의 나는 언제나 혼자이지만 이렇게 있으면 더더욱 혼자 같다.


아이들이 모두 하교하고 난 다음 선생님 홀로 책상에 앉아 있는 모습, 그런 이미지는 떠올리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 외의 누구도 나를 생각하지 않을 게 분명한 어느 오후.


모든 것을 쓰고 싶었다가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았다가 무엇이든 쓰고 싶어 진다. 오늘은 어제 산 도넛을 먹으며 나는, 으로 시작하는 문장을 쓰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떤 모습으로든 읽히고 싶지 않다. 이 방에서 홀로 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 그런 방식으로만 존재하고 싶다.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존재하려면 품이 많이 든다. 기분 좋은 여름의 미풍을 느끼고, 피부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감각하는 것, 네시 반의 빛을 가만히 따라가는 것. 나를 잃지 않고 주변 사람들과 적당히 어울릴 수 있는 것. 밖에서도 나의 공간을 지켜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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