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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수씨 홍시아빠 Jan 09. 2018

오파와 케파

함수씨일기 (2018.01.08)

예전에 가방만드는 회사에 다닐 적에

중국에 가서 생산공정을 익히고 현지 직원들이랑 익숙해지기 위한 출장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본사에서 디자인 작업만 하던 내가 실제로 물건이 생산되는 장면을 보게 된것은 신기하기도 하고,

그 스케일을 보니 디자인을 한다는 것이 한편으로 부담스럽기도 했다.


물건을 계속 생산해야지 공장직원들에 대한 임금이 꾸준히 주어지고,

그래야 공장이 계속 돌아가고, 생산된 물건을 팔 수 있는 곳에 적절한 가격에 공급해야 이윤을 남길 수 있고,

그 이윤들로 회사는 유지되고 반복되어 운영되는 흐름은 공기의 대류현상처럼 느껴졌다.


오파는 operation, 케파는 capacity

오파는 본사의 주문량을 말하고, 케파는 공장의 생산력을 말하는 단축어.

이 단어들은 공장에 있는 동안 현지 공장장님에게 많이 듣던 듣던 말이다.

당시 현지 공장장님과 현지 생산직 직원들은 본사의 과한 생산 주문량에 시달리고 있었다.

중국은 한국과 달라서 야근이나 추가 근무가 당연한 것들이 아니고, 한국처럼 뭐든 빠르지도 않은데도,

본사에서는 공장의 생산력을 생각하지 않고 주문량을 푸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말단 디자이너인 나는 초반에는 잘 몰랐는데, 한 달 가까이 현지에 있다보니 내가 몸담고 있던 회사의 이면을 많이 알게 되었다.

공장장님의 말대로 본사는 계속 생산을 푸쉬하고 있었고, 공장장은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다른 공장에 OEM의 OEM을 어음을 얹어가면서 무리를 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회사내 라인에서 생산을 하는 것이 아니니 생산단가는 높고, 이윤은 있으면 다행.


그렇게 만들어진 제품은 사실 시장에서 자체 브랜드도 아닌 대기업 전자제품의 OEM제품이었기에 그들의 단가에 맞춰서 이른바 후려쳐서 납품하기 바빳고, 대기업의 로고가 새겨진 제품은 덤핑이나 아울렛 등 다른 마켓에 팔 수도 없는 물건들 이었다. 


더군다나 본사 사장은 각 부서에 친인척을 꼽아놓고 회사의 수익을 부당하게 챙기고 있었고, 직원들에게는 최저임금 기준의 연봉만 제 날짜에 겨우 지급하고 있었다. 나름 글로벌 클라이언트의 OEM을 하는 전문 기업이라 자부심들도 있었지만, 알면 알수록 내 시간이 아까워서 퇴사를 하게 되었다.


생각나서 오랫만에 전에 다녔던 그 회사 이름을 검색해보니. 사장의 아파트가 경매로 잡혀있다.

채무자가 회사이름, 어허. 이런 결과를 알고싶어서 이런 글을 쓰고 있었던게 아닌데 참;;;


잡설이 길었지만, 그 회사를 다니면서 얻은 것이라곤 '오파 와 케파' 라는 말 뿐이다.

여느 드라마나 3류 영화에 나오는 직장인들의 씬을 겪은것도 얻은 경험이라고 해야하나.

이를 악물고 머리에 넥타이도 둘러봤으니-_-) 물론 그때는 인생은 연기다! 이러면서 영혼을 털었지만.

(할말이 많아서 잡설이 늘 더 많다)


그 이후로 프리랜서 디자이너를 하면서, 잘한 것도 없지만 늘 오파와 케파의 밸런스를 생각하곤 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만큼 적당히 일을 하면서 일도 잘하고 몸도 잘 관리하고, 여가도 즐기고~ 했어야 하는데,

늘 시간과 시행착오가 많은 디자인 작업에 외주 디자이너의 신분으로 끌려다니다 보니 늘 오파>>>>케파로 살아왔었다.


직장생활을 근 10여년만에 다시 하고 있는 요즘. 

이게 이제는 좀 안정화가 되나 싶었는데, 큰 차이가 없다. 이건 순전히 나의 체력과 의지의 문제긴 하다.


내가 해야하는일 / 하고싶은일 / 하기 싫어도 해야할 것들 / 챙겨야 되는 존재들 / 생존을 위해 하는 오파들

일을 해야하는 시간 / 약속시간 / 스케쥴관리 / 나의 체력 / 나의 마음컨디션 / 멘붕과 우울함 같은 케파들.


어제 일기에 휴식이란게 일하다가 잠깐 쉰다는 것이라고 해서 이제 할말이 없어졌지만,

휴식을 바란다는 그 말 자체가 지금 삶에 오파와 케파가 안맞는다는 말이기도 했다.

머릿속으로 나의 케파를 계산하고 오파를 늘려가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몸이 아프거나 무기력해지면, 전환을 위해 계획을 세우고 물건을 사거나 뭘 준비를 더하게 되는데.

그러면 나중에 요요현상 같은 큰 무기력감에 빠지게 되기도 한다. 지금이 딱!~~ 그런 시기다.


할것들은 늘 많이 남아있고, 잘해야 하고, 대충 할 성격도 못되고, 지속적으로 해야하는 것들을 하면 잘시간도 부족한데 잠을 덜자니 일상은 깨지기 시작하고 아~ 그러다가 애꿏은 지름신만 강림하시고 그런다.


불난집의 오파들을 찬찬히 정리하고, 

내 케파 상태를 확인하고, 케파의 건강을 키운다음에

오파를 조금씩 맞춰가면 된다.

공장은 그렇게 하면 좋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

아 이제 그만쓰고 밀린 작업을 해야지. 이거원. 

소크라테스가 1일 4시간 잤다고 하니. 그 말에 위안을 얻는다.


오파와 케파가 안맞으면 마음이 두근거린다. 걱정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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