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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수씨 홍시아빠 Jan 13. 2018

새로생긴 분식집

함수씨일기 (2018.01.12)

10년 넘게 자리를 지키던 목공방이 사라지고

간판에 불도 안켜지는 고무 스카시 컷팅에, 브랜딩 디자인이 전혀 되지 않아보여서

외적으로 볼 때 신뢰감, 호감도가 상당히 낮은 분식집이 들어왔다.

항상 내부가 보이지 않게 김이 끼고, 창문이나 유리문 등에 아무런 사인이 없어서

앞을 지나갈 때마다 "여긴 뭐하는데지." 이랬다.


하루는 궁금해서 가까이 가서 보니 A4용지 두장이 붙어 있다.

재료를 좋은 것을 쓴다, 조미료를 쓰지 않는다. 등의 내용인데, 그 글을 보니 마음이 조금 풀린다.

요식업의 시대, 정말 수 많은 식당들이 수 없이 생겨나고 없어지는 요즘에 이쁜 사진이나 멋진 디자인

하나도 없이 이런 글 하나 매장 밖에 붙여놓은 것은 순박해보이기 까지 한다.


몇 일후 저곳에서 저녁식사를 해보리라. 마음을 먹고 퇴근하고 분식집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주방 안쪽에서 두분이 뭔가를 하고 있다. 들어간 내가 인사를 먼저 했다.

식당안에는 텔레비젼이나 라디오도 없었다. 냉/온풍기 같은것도 없고, 전기난로가 한대 켜져있다.

서늘하고 고요했다. 주방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만 울려퍼진다-_-) 여긴 뭐냐;;;


메뉴판을 봤다. 기본 김밥이 2천원대다. 지워진 식사메뉴들 중에 가능해 보이는 것은 5천원대

라면은 2-3천원, 그리고 특이하게 2.500원짜리 잡채가 있고, 오뎅이나 유부초밥이 500원짜리가 있다.

셋트메뉴도 3종류 있는데, 김밥+잡채+유부초밥+오뎅=3.500원부터 시작한다. 김밥 값에서 1.500원만 추가하면 3.500원의 추가 메뉴가 구성되는건가. (물론 잡채가 조금 나오겠지만)

메뉴 가격들도 잘 계산되지 않은 단가다. 어설픈 메뉴판이 불안하지만 일단 효율이 좋아보이는 셋트를 시켰다.

그리고 호기심에 다른것도 하나 더 시켰다.


셀프인 물담으러 갔다가 훤히 오픈된

주방 안쪽을 자연스레 보게 되었다. 겸사겸사 매장 내부도 꼼꼼히 보았다. 나름 브랜딩 디자인을 해왔고, 식당이나 카페를 관찰하는 습관이 있던지라, 이 공간이 식당에 적합하게 기획되지 못함이 느껴졌다. 이정도면 당한 수준.


주방에서 나오는 동선이 막혀있고, 높지않은 층고에 레일 직부형 조명을 달았다. 조명 각도 조절을 막해놓아서 어디에 앉아도 눈이 부시다-_-)게다가 색상은 전구색도 아니고 주광색 LED15W는 되어보인다. 셀프반찬대와 정수기는 한참떨어져 있고, 폴딩 도어를 달은 창가쪽은 인도와 높이차이로 창문으로도 오픈시키기도 어렵다. 폴딩을 달 이유가 없었다. 간판은 말할것도 없다. 쓸데없고 쓸수도 없는 시공이 많았다. 가장 중요한 메뉴판은 깨알같은 작은 글씨다. 여러모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관찰하며 기다리다보니 음식이 한가지씩 나온다.

이건 무슨 분식 코스도 아니고, 오뎅도 2번에 걸쳐 나왔다. 맛있게 드세요 ~ 란 멘트도 없다.

음식을 내오는 모습을 보니 생전 장사 처음 하시는 분들같다. (기분 나쁘단게 아니라 그렇게 보였다)


아.


그런데 맛있다.


아.


김치도 맛있다. 직접 담궜네.


아.


오뎅국물은 맛없다. 오뎅국물 잘 하는 분식집은 희귀한 곳이니 이정도면 패스하자.


다른 메뉴들도 궁금해졌는데, 배가 너무 부르고 홀로 적막하고 추운 공간에서

식사를 하는것이 어색하여, 다음기회에.


그래도 카드결재가 준비되어 있는곳이라. 카드 결재를 했다.

그 이후로도 메뉴들을 정복하기위해 간간히 들렀다. 덕분에 나는 자주들리는 손님이 되었고,

나를 대학생으로 봐주시는 사장님은-_-) 뭘 시켜도 오뎅한개는 얹어주셨다.

식사를 하러 갈때마다 관찰하니 정말 장사 처음하시는 분 같다. 동네분들에게 외상도 받으신다. 세상에.


오늘은 돈까스 김밥과, 잡채 한그릇을 주문했다.

주문 내용과 달리 일반 김밥 1줄과 잡채 한 그릇이 나왔다. 오뎅 1개 서비스(오뎅만큼은 맛없다)

능숙하게 요리하시는분이 아닌걸 알기에 재주문을 요청하지 않고 먹었다.(그럴수도 있지 뭐)

계산을 하려고 현금 1만원을 꺼내드렸는데, 5천원짜리가 없다면서 잔돈을 찾기 시작하신다 (-_-);;;;;

그러더니 자주 오시니까 다음에 달라고 하신다.

성격상 외상을 못하는 나인지라(빚지면 잠을 못자서 일시불 인생) 잔금을 김밥으로 추가 주문 하려고 했다.

카드로 바꿔서 결재를 하려고 했는데, 결국 5천원을 발견하셔서 결재를 무사히 마치고 귀가했다.



아.

이런 딜레마 덩어리 식당이 생기다니.

맛있긴한데, 나머지는 다 어설픈 식당이라니.

그래도 가면 갈 수록 덜 황급해하는 모습을 보니. 언젠가는 잘 자리 잡으실 날이 올 것 같다.

몇 가지 가장 큰 문제점들을 보완할 필요가 있는데, 오지랎은 참기로 하고.


누군가가 나를 볼때도 이런 딜레마를 느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커피를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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