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 달의 행복이었던.
서른이 넘어서야 자주 가는 곳이 있다. 그곳에 가면 구매하지 않아도 감성이 짙어지며, 양식이 쌓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곳. 바로 <독립서점>이다. 아내와 3년 연애할 동안 딱 한 번 갔던 서점을 결혼 후 서른 줄이 돼서는 한 달에 서너 번은 찾는 것 같다. 그 이유는 멀리 있지 않다. 삶의 패턴이 바뀌었기 때문에 극장이나 카페보다는 서점이나 가정식 식당을 더욱 찾는다. 제주도에서 한 달 동안 살고 있을 때에는 가고 싶었던 서점 리스트를 정하고 적당한 때가 됐을 때 그리 향하기도 했다.
만춘서점은 나의 여행 친구 '엄지'에게서 추천받았던 독립 서점이었다. 제주도를 찾았던 아내의 친구를 공항에 내려주고 삼달리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방문했었다.
아마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대전에 돌아와서도 독립서점을 찾아다니는 이유가.
작디작은 그 서점 '만춘서점'
고등학교를 도시로 진학했다. 시골에 살던 내가 처음으로 높은 빌딩과 활기찬 거리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시내권에 3년 동안 오고 갔던 것이다. 당시 학교 앞에는 낡은 매우 작은 헌책 서점이 있었는데, 어떤 책이든 모두 구매해주던 고마운 서점이었다. 심지어 집에서 쓰던 라면 받침으로 쓰이던 잡지까지도 사주셨으니, 그 돈으로 PC방을 가든 분식집을 가든 그 자체가 행복이었다.
헌책 서점으로 들어서면 나는 냄새라고 할까? 아니면 향기라고 할까. 숨이 탁 막히는 그 향을 맡으며 복잡한 서점 속을 뒤적이던 기억이 난다. 난 주로 만화책을 보기 위해서 방문했지만…
종류는 다르지만 만춘서점에서도 그 특유의 책 향기를 맡았다. 복합공간이 돼버린 대형 서점은 다양한 용품들과 가게 때문에 이 향기가 사라진 지 오래지만 독립서점에서는 책으로 가득한 종이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책 페이지가 넘어가는 그 순간에 쓱 다가오는 향수는 만춘서점에 오래 머물 수 있던 원동력이 됐던 것 같다. 친구가 출간한 책을 찾아보기도 하고, 사진과 여행에 대한 흥미로운 에세이를 뒤적여보기도 한다.
처음으로 늦잠을 잤다. 거실에 나가보니 아내와 수아는 이미 대낮이다. 제주도에서 유일하게 내가 아내보다 늦게 일어났던 날이 바로 만춘서점을 방문하기로 했던 이 날이다. 안녕? 수아!
만춘서점은 제주 조천읍 함덕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이 작은 마을에 작은 서점 하나가 들어섰다. 그래도 내가 방문했던 독립서점 중에서는 규모가 큰 편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아담한 마을에 소담한 서점이 생겼다.
일반 서점에서 볼 수 없는 책들과 작업자의 공간이면 충분하다.
만춘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을 수 있다. 청춘을 만춘으로 표현했을까 아니면 봄을 뜻하는 단어일까. 작업자의 공간이지만 뜻은 누구나 다르게 풀이할 수 있다. 그게 단어가 가진 특징이다. 아, 청춘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독립서점 대부분은 다양한 작가의 책을 장려한다. 심지어 1인 출간을 도와주는 서점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흥미로운 독립서점들이 많이 생겨나는 것이 나는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일까? 대형서점의 등장으로 사라진 마을 서점이 독립서점 형태로 되살아나고 있다.
대형마트에서 전통시장으로, 편의점에서 마을가게로 이동할 날이 곧 올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삶의 형태는 계속 돌고 도니깐,
책은 구매하지 않았다. 대신 이 마을을 구경한다. 서점에 갔다고 꼭 책을 구매해야 되는 것은 아니다. 그 공간에 발을 디디고, 흔적을 남겼으면 그것으로도 의미가 있다. 다음엔 내 마음을 흔드는 책이 놓여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