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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컴쟁이 Jun 27. 2024

남미 부자동네 체험기

일상으로의 초대


오늘 같은 휴무에 완결을 내면 참 좋겠다 싶어서 다시 한번 메모장을 켰다. 마지막 남은 굵직한 일정은 남미에 미라 플로레스 자유여행이었다. 리마 공항에서 미국까지 간다음에 한국에 돌아가는 코스였기 때문에 맨 처음 도착 했던 리마 공항을 다시 찾았다.

여행이 지나고 3주 정도가 지났는데 기억은 휘발된다. 그렇기 때문에 기록은 참 소중하다. 사진 하나하나 보니까 그때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우유니 사진을 찍고 나서는 그다음 날 무리를 했는지 남편이 감기를 앓기 시작했다. 딱히 가고 싶은 데도 없고 숙소 컨디션이 너무 좋았다 보니 그냥 숙소에 머무르기로 했다. 저녁식사도 숙소에 레스토랑이 있어서 거기서 해결하기로 했다. 기대했던 것보다 맛있고 무엇보다 숙소 외부의 다른 음식점을 찾아보지 않아도 돼서 편했다. 패키지여행을 가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렇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루 푹 쉬고 사진 정리도 하고 블로그에 글도 올리고 뉴스레터도 쓰고 오랜만에 새로운 정보를 찾는 것보다는 기존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런 시간을 가지면 마음이 정말 편해진다.


다음날은 비행기를 세 번 타는 일정이었기 때문에 조식을 든든히 먹고 우연히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산 엽서는 기념품으로 선물을 줄 때 반응이 참 좋았다. 남편이 아팠기 때문에 컨디션이 정말 안 좋아 보였는데 옆에서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안타까웠다. 그래도 내가 이전에 아팠을 때 먹었던 약이 남편에게도 효과가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증상이 나아지길 기다리고 목말라 보이면 물을 줄까? 물어보고 기력이 달려 보인다 하면 쉬라고 쉴 곳을 찾아 주는 것 정도. 길을 찾는데 능숙하지 않아 엄청난 도움이 되지는 못 했겠지만 내가 아팠을 때 남편이 해줬던 것들, 고마웠던 것들을 되짚어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해 주려고 노력했다.

어찌어찌 시간이 지나고 리마 공항에 도착했다. 리마 공항에 도착해서는 Uber 택시를 탔는데 해외에서 처음 사용해보고 데이터가 안터져서 두려움 반 설렘 반이었다. 뺑뺑 돌아가는 길 때문에 살짝 심장이 쫄렸지만 무사히 우리의 숙소에 도착했다. 기진맥진 그 자체였는데 밖에 나가기 정말 귀찮았다. 그럼에도 호텔조식, 공항에서 사 먹은 군것질, 기내에서 준 주전부리 외 (나열하고 보니 많이 먹었네?) 제대로 된 끼니를 안 챙겼기 때문에 무언가를 먹어야 된다 생각은 들었다. 아 맞다 비행기를 기다리며 그 사이에 마신 우유니 공항에서의 커피는 남미 여행 중 먹었던 커피 중 최고였다. 남은 돈이 없어서 점원분이 조금 깎아 주셨는데, 그건 마저 맛에 녹아 있었던 느낌이다. 다시 생각해도 정말 맛있었다. 일등이었다.


귀찮음을 이겨내고 중국 음식점에 갔다. 메뉴판이 모두 영어여서 당황했지만 감을 따라 시켜봤다. 이것도 재밌는 경험이 되었다. 우리가 먹은 음식은 이 두 개다. 감자전 같은 음식과 동그랑땡 같은 음식.

아침은 일어나자마자 씻고 동네 산책을 하고 크레페를 먹으러 갔다. 우리가 묵은 에어비앤비는 여태 묵었던 숙소 기준 고급 숙소였지만 전날 너무 늦게 들어왔기 때문에 충분히 즐기지는 못 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기분의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물 하나 사 먹으러 나가기도 귀찮고 그렇다고 웹서핑 중 찾은 배달 어플(Rappi)을 사용하는 것도 두렵고.. 심신이 지치면 쪼그라진 나를 발견하게 된다. 어쩌겠나 이것도 나다. 싫어 싫어 부정하고 단번에 극복하려 애쓰기보다는 충분히 충전시켜 주고 위로해 주고 다음날을 기다려보는 게 내가 아는 꽤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번 여행을 총책임진 남편이 지쳐 보여 그다음 일정은 내가 짜기로 했다. 사실 자신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있는 음식을 중점적으로 찾고 갈 만한 곳을 몇 개 택한 다음에 우리의 일정에 맞추어 소화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새벽 1시 비행기라서 숙소를 안 구하면 오늘 묵은 에어비앤비에 짐을 맡기고 늦게까지 관광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까지 보고 싶은 곳이 없었을뿐더러 기념품을 사고 맛있는 것을 먹고 가는 짐 정리를 하고 시내 맛집 탐방을 하려면 아무래도 아주 저렴한 숙소를 구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그래서 한국에 모텔 같은 숙소를 구했는데 결과적으로는 구하길 참 잘했다.

대도시라 그런지 이동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골목골목 예쁜 주택들, 이 집은 얼마나 할까 라는 순수한 호기심 정원이 잘 관리된 곳은 아무래도 비싸겠지 라는 시시껄렁한 대화 이곳은 남미가 아니라 그냥 서울에 잘 꾸며진 주택가 같았다. 그래서 마음이 조금 더 편했다. 점심으로 맛집이라고 인터넷에서 본 미디어에 노출되었던 음식점에 갔고 저녁은 프랜차이즈 음식점에서 수프를 먹었다. 둘 다 줄을 서서 먹어야 했기 때문에 맛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틈틈 그 사이에 갔던 마트와 기념품 숍은 정말이지 기분전환에 최고였다. 이것저것 사고 누굴 줄까 고민하고 이 선물은 어떤 사람한테 어울릴까 떠올리고. 이 과정은 어디서 경험해도 비슷한 행복감이 든다.


숙소에 도착해 한 차례 씻고 뒹굴거리다 보니 이제 한국에 간다 라는 실감이 났다. 물론 한국에 가면 지루한 일상도 있고 챙겨야 될 사람도 많고 미뤘던 일정도 소화해야 되지만 나는 여행 같은 삶이 진짜 여행보다 훨씬 더 좋다. 여행이 삶이 되고 싶지 않다. 삶에서의 사소한 여행을 찾으면서 살 거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기에는 어설픈 논리겠지만 익숙함 위에 쌓는 새로움이 좋지 새롭고 새롭고 새로워서 그게 익숙해지는 건 싫다.

휴양지로 신혼여행을 택하지 않은 이유도 어쩌면 비슷한 맥락일지 모른다. 휴양지 에서의 여행이 너무나 좋고 즐거우면 돌아가기 싫어지니까. 기본적인 나의  삶을 싫어할 수도 있으니까, 일상을 탈출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질지 모르니까, 계속해서 놀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 있으니까. 일상을 탈출하고 계속해서 노는 게 나쁘다는 것만은 아니다. 각자의 정도는 다르겠지만 내 기준 일상을 탈출하고 계속해서 놀아 본 결과 더 이상 놀기 싫어지고 우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남미의 부자동네 체험기가 적다 보니 마음속 깊은 생각들이 밀려 들어와 이렇게 변질되었지만 촘촘히 적힌 글들을 보니 괜히 뿌듯하다. 나, 꽤나 대단한데? 기록에 성공했다. 여행 날의 감정과 지금 나의 감정을 날것으로 한숨에 적어 냈다. 이 기록이면 언제든지 결혼을 결심한 때 와 결혼을 하고 난 직후와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내 모습을 간직할 수 있을 거야.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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