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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먼지 Jul 09. 2020

결혼의 모양

혼란 속에서 살아남기

“결혼은 멋모를 때 일찍 해야 돼”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내가 멋모를 때 일찍 했다간 바람피우다 이혼했을지 모르겠다.

멋모를 그때를 회상해 보면, 반쯤은 정신이 나가 있었다. 뭐가 뭔지 모르고 좋아했다가, 이유 없이 싫어졌다. ‘진짜 마음’도 모른 채 그저 뜨거웠다. 그래서  일을 할 때도 사람을 만날 때도 위험했지만 순수했다.


행복한 열정 나부랭이

뜨거운 그때, 사회에서 '열정 페이'란 말이 처음 나왔다. 열정 페이란 아주 적은 월급을 주면서 청년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행태를 비꼬는 말이다. 당시 내 주위에는 디자인 회사나 영화 현장에서 일을 시작한 친구들이 많았는데 늘 박봉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리 불행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때는 그 부당함을 젊음이라는 패기로 퉁칠 수 있었던 거 같다. 당시 방송국에서 일했던 나 또한 부당함을 젊음으로 퉁쳐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줄 때에도 무모했다. 연애를 시작하면, 너무 좋기도 했고 너무 아프기도 했다. 술과 친구를 좋아하는 남자와 만남을 유지하는 데, 나의 모든 에너지를 소진했다.


결혼의 모양

‘결혼을 무엇일까?’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에서는 ‘결혼은, 좋을 때는 아주 좋은 것’이라고 했다.


무라키미 하루키 <잡문집>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나도 한 번밖에 결혼한 적이 없어서 자세한 것은 잘 모르지만, 결혼이라는 것은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별로 좋지 않을 때는 나는 늘 뭔가 딴생각을 떠올리려 합니다. 그렇지만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좋을 때가 많기를 기원합니다. 행복하세요"


이제 결혼 1년이 지난 나도 결혼에 대해 자세한 것은 잘 모르겠지만, 결혼은 내가 과거에 쏟아낸 감정과는 다른 모양이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상처를 허락할 만큼, 내가 바스러질 정도여야 했던 나의 덧없는 이야기들은 결혼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때,

나의 마음은 평온했고, 아무런 상처도 없었고, 시원하고 좋은 바람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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