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에 키우던 개가 죽었다.
팩트인데 이렇게 쓰니 참 냉정하다.
17년간 남동생으로 생각하며 같이 살던 개 식구가 올해 초 갑자기 죽었다.
이렇게 쓰니 마음이 아릿하다.
나는 결벽이 있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개를 키우지 않는다.
강아지는 냄새가 나고 지저분하다.
어느 날 언니가 작은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왔다.
언니는 결혼해서 집을 나가고, 자식 둘을 낳았고
나는 본가에서 부모님과 개와 함께 계속 살았다.
결혼을 할 때 고민했다.
내가 데려가는 게 맞는지, 부모님께 두는 게 맞는지
남편은 맞벌이인 데다 우리 아파트는 임대주택이고
노견이 환경 바꿔서 적응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것보다 전업주부인 엄마가 계속 있고 조카들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 북적이는 집에 있는 게 맞다고 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라 본가에 두고 결혼을 해서 아주 멀리 와서 살게 됐다.
가끔 본가에 1박으로 자러 가는 건 순전히 개를 보기 위해서였다.
엄마 아빠는 밖에서도 만날 수 있지만 개는 약속을 정해서 만나러 나올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엄마가 개의 상태가 몹시 좋아졌다고 했고, 다급하게 날아갔다.
그게 올 설날 무렵이었다.
나를 보고 처음엔 반기더니 이내 기운을 잃었다.
위독한 거 같으면서도 죽지 않고 헐떡이며 작은 생명을 희미하게 이어갔다.
이후로는 의식이 없었고 똥도 자신의 의지로 싸지 못하고 먹는 것도 코줄에 의지해서 넣어야 했다.
입원도 했지만 더 좋아질 건 없을 거란 말에 데리고 왔다.
괴로웠다.
병자를 간호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밤중에 죽은 걸까 숨을 확인하고 잠들곤 했다.
엄마와 내가 밤을 새우며 지냈다.
명절이라 다행히 그럴 수 있었다.
1주일 정도 지났을 때 보냈다.
마지막까지 정말 괴로운 모습만 봤다.
아프기 시작하면서 죽을 때까지 하루도 울지 않은 날이 없었다.
개는 간헐적인 발작과 비명을 계속했고
우리는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었다.
마지막에 가장 오래 병간호를 한
엄마는 이제 그만 연명하고
안락사를 시키는 게 좋겠다고 했다.
일말의 희망으로 기적처럼 좋아지지 않을까?
했지만 식구들 모두 고개를 저었다.
나는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했다.
어릴 때 키워주셨던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가장 많이, 가장 오래 울었다.
(지금도 여전히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못해준 거, 미안한 거 백만 가지 후회만 들었다.
남편은 군말 없이 날 병원에 데려다주거나 묵묵히 위로해 줬다.
우리에게는 애기 때부터 키운 귀여운 식구였지만
사실 남편은 우리 개에 아무런 애정도 없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볼품없이 늙어서 다리도 절뚝거리고 눈동자도 탁하고 털도 듬성듬성하고 냄새도 나고
우리 개 엄청 귀엽다던 내 얘기와 다른 초라한 모습에
그는 충격적이었던 듯했다.
너무 늙었다. 안쓰럽다. 귀엽진 않다.
두고두고 나에게 얘기했다.
그때 알았다.
아 나한테는 특별한 개지만
남들이 보기엔 충분히 산 늙은 개구나
별로 영특하거나 착한 개는 아니었지만
나한테는 참 특별한 하나의 존재였다.
지금도 생각하면 전혀 괜찮지 않다.
그래서 남편은 그 개가 죽은 이후 우리 집에 개는 없다!라고 못 박았다. 아무리 자식이 떼를 써도 키우지 않겠다고 했다.
옆에서 그렇게 우는 걸 봤는데 다시는 키우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난 은퇴 후 목표가 하나 생겼다.
내가 온전히 개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때 가정이 필요한 개들에게 보호처가 돼주고 싶다.
최선을 다해 보호해 주고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고 먼저 간 우리 개에게 조금이라도 속죄하고 싶다.
임시보호를 우선 생각한 이유는 이별이 슬퍼서다.
하지만 계속 집에 못 가는 개가 있다면 분명히 키우려고 할 것이다.
자식도 다 키우고, 남편도 자신의 취미생활을 할 때 나는 개를 돌보며 남은 생을 보내고 싶다.
(물론 너무 늙어서는 내가 개보다 먼저 죽을까 봐 키우지 않을 작정이다.)
이게 내 은퇴 후 목표이자 목적이다.
그래서 나중에 먼저 간 우리 개에게 너에게 못 준 사랑을 나눠주고 왔다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