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진정성 따위는 개나 줘버리라는 세상에서 살아가기

by 동녘새벽

프롤로그 : 진정성 따위는 개나 줘 버리라는 세상에서 살아가기


“저 형은 너무 착해서 안돼.”


이 말을 한 사람의 목소리가 예상보다 컸거나, ‘저 형’의 귀가 밝았던 모양입니다. 얼핏 들으면 착하다는 칭찬 같기도 하지만 강조점은 ‘안된다’는 단정에 찍혀 있었죠.

“지금 뭐라고 했어? “라고 물으면서 후배를 다그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었다면, 애당초 후배가 착하다고 안 했겠죠. ‘저 형’의 머릿속에서 호문쿨루스(Homunculus : 머릿속의 작은 자아)가 속삭입니다.


“화내지 마, 넌 착해서 화내면 안 돼~!”


그렇습니다. 세상은 변했습니다. ‘착하다’는 더 이상 칭찬이 아닙니다. 그저 자기 몫을 못 챙기고, 필요 이상으로 남들에게 잘해주는 실속 없는 호구와 동의어가 되어 버렸습니다. 언제부터 조용하고, 선한 다수의 사람들이 시끄럽고 영악한 소수에 의해 이용당하는 세상이 된 걸까요?


바야흐로 ‘진정성 따위는 개나 줘버리라는 세상’이 도래했습니다. 우리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다가온 이 세상은 참 살기 피곤합니다. 누군가가 나를 이용하기 위해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큰 야심 없이 평범하게 사는 것도 그 진심을 의심받습니다. 경쟁은 심해지고, 신뢰는 바닥을 드러내고, 우울은 일상화되었으며,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기 시작했습니다.


회사 생활을 시작한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회사에서는 금속으로 만든 넓적하고 묵직한 기념패를 하나 주더군요. 이제 이가 시원찮아지는 나이니까 견과류 까먹을 때 이용하라는 의미일까요? 어쨌거나 ‘저 형’은 한 번의 이직도 없이 한 직장에서 24년이란 시간을 보냈습니다.

학교 선후배들은 두 번 놀랍니다. 처음에는 제가 회사원이 된 것을 놀라워했고, 5년 넘게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다니는 것에 더 놀라워합니다. 사실 저도 제가 놀랍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회사원으로서 살아갈지 몰랐거든요.


태어나서 한 번도 에너지가 넘친 적이 없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차분하고, 느릿해 보이고, 내성적이고, 그렇지만 내면에는 예민한 강물이 흐르는 사람들 말이죠.

저는 사람을 두 가지 부류로 나눕니다. 사과 껍질을 깎아 내고, 처음 칼로 베어 내면 단면이 완벽한 원형인 조각이 1개 나옵니다. 한 부류는 그 동그란 조각을 거침없이 집어드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한 부류는 절대 그 조각에 손을 대지 않는 사람들이죠. 물론 저는 한 번도 손을 안대는 부류의 사람이었습니다. (대개 그 조각을 집어드는 사람은 장남이거나, 누나 많은 집의 막내아들인 경우가 많더군요.)


힘겹게 입시를 치르고, 제가 선택한 전공은 심리학이었습니다. 엄청나게 큰 포부를 가지고 선택한 것은 물론 아니었죠. 상경계열을 제외하고, 어문계열 배제하고, 법학을 빼고 이런 식으로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학과들을 제외하고 남은 선택은 심리학, 사회학, 철학 정도였습니다.

명확하게 좋은 것을 먼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싫은 것을 먼저 제외하는 방식의 삶. 단면이 동그란 사과를 집어 들지 않는 태도와 결이 같지 않나요?


다행히도 그 선택은 나쁘지 않았고, 저는 학부를 마치고 심리학과 대학원까지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석사 논문을 쓸 즈음에 문득 이런 고민을 했습니다. 심리학이라는 학문의 목표가 "인간을 이해하는 것"인데, 학교에 계속 있으면서 대다수의 사람들의 일상을 이해할 수 있을까? 상아탑 안에서 밖의 모습을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심리학을 아는 사람들이 때때로 그 학문은 대학교 3학년 남성들의 심리학 아니냐고 농담을 합니다. 심리학의 많은 논문들이 질문지를 통해서 작성되는데, 대체로 편의를 위해 선배들이 출강하는 수업에 들어가서 데이터를 얻습니다. 평균적으로 대학교 3학년 남성들이라는 것이죠. 그들이 ‘인간’을 대표할 수 있을까? 하는 가시 돋친 농담이자 타당한 의문입니다.


제가 사는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회사에서 삶을 보냈거나 보내고 있습니다. 결국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회사라는 이름의 삶의 현장을 경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문화인류학에서 말하는 일종의 현장 조사(Field Study)를 한다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마침 심리학과 대학원 졸업예정자들을 위한 채용이 있었고, ‘2년만 버텨보자.’는 심정으로 회사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2년만 버텨보자던 회사 생활이 20년을 훌쩍 넘었습니다. 사원부터 시작해서 선임, 책임을 지나 수석이 되었다가 이제는 직급을 부르지 않는 시대까지 왔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참으로 다양한 사람을 만났고, 다양한 경험을 했습니다.


가득 찬 24년이 지나던 순간, 문득 이제 회사 생활을 마치고 내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4년 전으로 돌아가 회사와 학교 사이의 선택의 기회가 다시 온다면? 회사를 향한 선택에 후회는 없습니다. 치열하고, 생생한 24년의 경험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회사의 전성기를 함께 했고, 일정 부분 힘을 보탰다는 자부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24년을 넘겨서 계속 회사생활을 한다면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반드시 후회할 것 같았습니다.


이제 24년간 남몰래(?) 진행했던 필드스터디의 결과물이 나와야 할 시점입니다. 제가 직장이라는 삶의 현장에서 수행한 필드스터디의 화두는 ‘진정성’이었습니다. 회사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이런 질문을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습니다.


“회사와 같이 이익을 중심으로 뭉친 경쟁적 집단에서도 진정성 있는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항상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기에, 직장 동료 선후배들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가려 했습니다. 물론 돌아오는 반응은 다양합니다. 마치 어린 시절의 친구처럼 진정성을 알아주는 부류가 있었고, “ 이 사람 꿍꿍이가 뭐지?” 하면서 오히려 경계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앞선 반응은 저의 진정성을 알아본 사람들의 반응이고, 뒤의 반응은 왜 잘해줘? 저의가 뭐야? 하는 사람들의 반응이었습니다.


수년 전부터 진정성이라는 단어가 정말 많이 쓰이는 것을 느낍니다. 2023년에는 올해의 단어로 선정되었을 정도입니다. 혼자 좋아하던 뮤지션이나 작가를 모두가 알게 되었을 때 느끼는 아쉬움조차 피어납니다. 하지만, 여전히 진정성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이해와 고민은 부족한 상황인 듯합니다. 이 책에는 진정성에 대한 오랜 의문과 고민의 흔적들을 담고자 노력했습니다.


저는 이 작업을 개똥심리학 프로젝트라고 부릅니다. 짐작하시는 것처럼 개똥철학이란 단어에서 따 왔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진정성이 사라진 이유 중 하나는 개똥철학의 부재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개똥철학 혹은 개똥심리학은 개념적이고 수준 높은 이론을 직업적인 수준에서 전개하는 일이 아니라, 일상의 가치관을 개인이 아마추어 정신으로 정립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때 "개똥"은 흔하고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이고 개인적이며, 의미 있는 것을 뜻합니다.


가끔 특정 문화나 사회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으로 분석하는 책을 봅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나 방어기제, 자유연상, 퇴행, 리비도 등등의 멋져 보이는 개념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심리학을 전공한 제 마음에도 와닿지 않더군요. 다시 말하면, 구름같이 떠있는 추상적 개념들을 땅으로 가지고 내려오는 것이 개똥심리학의 매력이자 효용인 듯합니다.


진정성에 대한 책인 만큼 제가 모르는 내용을 쓰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끝까지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꽤 긴 시간에 걸쳐 몇 번이나 갈아엎었는데 그 기준은 “과연 나라면 이 책을 끝까지 읽을 것인가?”였습니다.


부디 이 책이 영화와 드라마, 게임과 스포츠 이벤트, 숏츠와 릴스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를 기원하며!


2026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