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옆에 있는
침대에서 굼뜬 몸을 일으켜 나갈 채비를 하고 브런치를 먹기 좋은 시간, 튈트리 공원으로 걸었다. 여행자답게 이곳저곳을 눈여겨 관찰하며 다녔고, 영화에 자주 등장했던 공원 분수 벤치에 앉아 주변에 있는 키츠네 카페에서 주문한 커피 한잔을 손에 들고 시간을 보냈다. 태양이 점점 분수의 중심으로 이동하는 동안 벤치에 앉아 주변 소음을 배경음악 삼아 노트와 펜을 꺼내서 내 옆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 나열해보고 사색을 한다.
20킬로그램의 삶(박선아 작가의 책)이 된다면 나는 어떤 것들을 내 곁에 둘까? 많은 것들을 내 옆에 두려고는 했지만 그것들을 떠나보내거나 우선순위를 정한 적은 없다. 간택당하지 않은 것들이 느낄 그 서운함 감정들이 미안해서.
1. 노트와 펜 ( 아이패드와 아이펜슬 )
살아가면서 타인과 함께하는 사회적인 시간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이 자신만의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밀렸던 업무를 복기하는 것이다. 빠트린 게 무엇이고 조금 더 도닥여서 단단하게 만들어야 할 업무들이 무엇인지 머릿속을 정리하는 것. 해왔던 업무들과 해야 할 업무들을 구분 짓는 것. 사색하지 못했던 것들을 찬찬히 더듬어 보는 것이다. 단어, 문장, 대화 속에서 스쳐 지나갔던 것들 메모했던 것에 대해 면밀히 관찰하는 것. 미뤄왔던 영화나 글들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새로운 감정을 느껴보고 생각지도 못한 관념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해보고 새로운 것들을 통해 자신을 넓혀 나아가는 것.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해서 나아가는 방향을 계획하고 선을 그려 보는 것이다. 그 방향 속은 혹은 그때 혹은 이때 해야 할 것들이 생기고 그것들이 무엇인지 인지하고 성취해 나아가는 기쁨을 느껴보는 것. 이런 모든 것들을 적어가며 정리해가는 행위를 사랑하는 사람과 공유하고 함께 같은 방향으로 선을 그어 가는 것. 그렇게 각자의 선을 우리의 선으로 고쳐나가는 것이다.
2. 청바지/스니커즈/재킷/코트
최소한 사회적인 인간으로서 나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줄 수 있는 옷. 어떤 자리에서도 과락하지 않을 수준의 옷이면 된다. 청바지만큼 관리하기 편하고 단순한 바지가 없을 것 같고, 구두 같은 신발이 아닌 캐주얼한 스니커즈가 좋겠다. 가끔 포멀한 자리에서 입을 수 있는 재킷과 그 위에 추울 때 걸쳐 입을 수 있는 코트.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3. 돗자리
가까운 곳에 공원이 있다면 그곳에서 편히 쉬고 싶다. 굳이 돗자리가 없어도 되지만, 이거 하나로 앉아만 있어야 하는 것을 누울 수 있게 되고 손으로 받쳐 먹어야 하는 것도 바닥에 놓고 먹어도 된다. 생각보다 가성비가 좋은 물건 중 하나이다.
4. 와인 오프너
기분 좋은 날 혹은 분위기 좋은 날 와인이 선사해주는 무언가가 참 매력적이다. 다양한 맛을 가지고 있는 술. 마시면 마실수록 혓바닥이 텁텁해지고 입술 주름이 뻣뻣하게 굳지만 그럴수록 와인잔에서 출렁거리는 와인처럼 나의 마음은 출렁거리거나 일렁거린다. 일렁이다는 상태로 다 마시지 못하면 남은 와인은 백팩 옆에 꽂아두고 잔잔하게 찰랑거리는 센강 옆을 걸어가며 센강과 얽혀있는 기억들을 더듬는다. 영화 장면들, BGM, 대사, 분위기... "미드나잇 인 파리"영화와 같이 차를 타면 어느 시공간으로 옮겨지게 되는 것처럼 와인 한 병이 익숙한 곳으로 이동시켜준다. 오늘은 라라랜드 OST "AUDITION 노래를 들으며 걷는다. 피아노 건반과 발맞춰 걸어가며 목이 마르면 가방에 꽂혀있는 와인을 꺼내 코르크 마개 따는 경쾌한 소리를 "짠"소리 삼아 목을 축인다. 센강 반대편을 바라보며 어떤 파리의 풍경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지 반대쪽에서 들리는 행복한 웃음소리를 바라보기도 하고 중간에 앉아서 센강이 얼마나 차가울지 상상해보기도 한다. 그렇게 다리 몇 개를 통과하고 퐁네프의 다리까지 지나가고 나니, 잔잔한 악기 소리를 만들어내는 한 남자의 어깨 건너로 하얀색천으로 둘러쌓인 테이블과 그 주변을 촛불들이 둘러싸고 있다. 하얀색 의자에 앉아있는 여성과 그 여성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남성. 참으로 사랑스럽다. 그 풍경을 지나친 후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나 보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와인병을 오프너로 개봉한 후 같이 출렁거리며 센강을 바라보고 싶다.
5. 필름 카메라
어느 순간을 담고 싶고 간직하고 싶다면 카메라를 꺼내 들어야 한다. 휴대폰으로 찍어도 좋지만, 무겁고 불편한 필름카메라가 가지고 있는 촉감이 있다. 익숙해지고 능숙해진 나에게 맞춤형으로 바뀐 필름카메라를 들고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순간을 필름에 담아두고 시간이 지나 열어보았을 때, 잠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 얼마나 사랑스러운 순간이었는지 내 입가에 미소가 답해주고 있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지나도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디지털카메라도 좋지만 필름카메라가 더 마음에 든다.
6. 커피 드립퍼
상쾌한 아침을 여는 방법 중에 커피가 있다. 정신을 차려주게 하는 카페인도 좋지만, 커피를 내릴 때 생기는 커피 냄새가 참 포근하다. 시간은 조금 더 필요하지만 천천히 떨어지는 커피 방울을 기다리는 여유가 주는 시간의 공백을 즐긴다. 그리고 눅눅한 커피 향이 아닌 담백한 커피 향이 방안에 퍼지면 사랑하는 사람도 스르르 눈을 뜰 테니. 그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아침햇살과 같이 바라볼 수 있다면 그만큼 상쾌한 아침이 어디 있겠는가.
7. 운동복
가끔 몸이 찌뿌둥하고 체력이 떨어지는 것 같을 때, 가볍게 운동하는 것을 좋아한다. 러닝이 가장 간단하고 산책도 좋겠다. 같이 발걸음을 맞춰가면서 하나의 도착점으로 나아가는 느낌이 주는 듬직함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듬직하게 바라봤으면 좋겠다. 나 또한 그러하니까. 너 또한 그러하길 바란다.
생각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많지 않다. 더더군다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더 적어질 텐데, 우리는 왜 항상 MORE&MORE를 외칠까? 둘이 사랑하기도 바쁜데 다른 곳이 노력과 시간을 쓰지 않게 하기 위해 상대방을 위해 배려하는 마음은 더 좋은 가구 더 좋은 제품 더 좋은 소재들을 소유하려 한다. 그 마음이다. 그 마음 하나면 충분하지 않을까? 좋은 컴퓨터, 좋은 옷, 좋은 차, 좋은 술, 좋은 카메라 , 좋은 커피, 좋은 운동복... 모두 다 사랑하는 사람이 MORE&MORE 편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필요하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