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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정 Mar 08. 2016

여행을 남기다

소중한 기억을 붙잡아두기 위해서

2015.12.28 ~ 2016.02.19  

총 55일간의 여행이 끝이 났다. 일주일은 족히 넘었던 이동시간을 포함하여 총 55일, 6개국, 13개의 도시를 열심히 헤매었던 나의 여행. 

대학생 때 돈을 모아 배낭여행을 가는 것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1년 휴학을 하며 일도 하고 돈도 벌면서 준비하다 첫 배낭여행으로 겁도 없이 남미를 선택했다. 첫 배낭여행에다 지구반대편으로 가는만큼 로망도 컸고 하고 싶은 것도 참 많았다. 욕심만큼 모든 것을 다하진 못했지만 하루하루 만나는 풍경, 소중한 순간들에 감사하며 열심히 발걸음을 옮겨 다니다 보니 55일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55일이란 길고도 짧았던 시간 동안 내 인생의 최고의 순간이라 할 수 있을 순간들, 그리고 최고로 힘들었던 순간을 함께 맞았다.

 안녕? 바다사자야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경들 앞에 서니 정말 이대로 죽어도 좋다는 생각이 여러 번 들더라. 바다사자랑 눈 앞에서 수영을 하며, 마추픽추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또 온 세상이 하늘이고 구름인 우유니에 서있으면서, 아타카마에서 쏟아지는 별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지금을 기억하고 싶어서 온 몸으로 애썼던 기억이 난다.

여행의 반이 풍경이었다면 나머지 절반은 사람이었다. 내가 여러 이유들로 하기 힘들거라 생각했던 일, 꿈만 꾸던 일들을 당당하게 실현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모든 순간이 낭만적이고 편한 건 아니었다. 집에 있었으면 안 해도 되었을 고생을 한 셈이니까. 매일 무슨 문제가 생기고 해결하고, 잘 풀리는가 하면 꼭 변수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멋진 풍경을 보러 가는 과정은 녹록지 않을 때가 많았지만 결국은 고생도, 기쁨도 다 나의 여행을 채우는 소중한 이야기들이었다. 

천국이 있다면 이런 곳일 것 같은 티티카카호수
맑고 영롱한 아타카마의 소금호수
끝이 보이지 않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모레노 빙하
피츠로이 봉우리 아래서
이카의 일몰
아타카마의 쏟아져내리는 별들 아래서


떠나기 전, 여행이 나를 바꿔주길 기대했었다. 대학에 와서 우왕좌왕 헤매는 나, 매학기 지쳐있는 나, 애쓰되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나를 발견하는 날들이 많았다. 그러던 중 휴식과 피할 곳을 찾아 하게 된 1년의 휴학 그리고 첫 배낭여행이 나를 변화시키는 촉매제이길 바라며 여행을 떠났다. 

여행에서 일상으로 돌아온지 일주일이 되는 지금. 그냥 잠시 꿈을 꾸고 일어난 것처럼 나는 지극히도 그대로다. 얼굴과 몸이 잠시 타고 거칠거칠해진 것 말고는 달라진 게 없어 보이기도 한다. 벌써 사진을 보지 않으면 그때 그 순간이 잘 기억나지 않고, 더 무서운 것은 여행에서 느끼고 결심한 것들이 한국에 와서 다시 카톡을 켜고 매일 sns를 보고 있는 일상의 순간순간 재빠르게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어떤 것이든 해낼 자신이 있었던 나는 다시 학업, 취업, 주변 사람들의 모습에 전전긍긍하는 나약한 내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렇게 남겨보기로 했다. 

글과 사진을 모아 그때의 순간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며 남겨 두자.

기억은 참 나약해서 매번 모습을 이리 바꿨다, 저리 바꿨다 하는데, 여행을 하는 그 순간에도 조금 지나간 일이 새로운 기억에 밀려 흐릿해지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소중한 순간들이 별거 아닌 일이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매일 일기를 썼다. 지금, 다시 그 일기를 읽어보니 매일매일 감격에 차서 열심히 살아야지, 다 할 수 있어 하며 이 순간을 잊지 말자고 외치는 내가 있다. 그때의 나, 그때의 감정을 스스로 기억하기 위해 나의 여행을 남겨두려 한다. 반짝였던 그 순간이 시간이 지난 뒤에도 그대로일순 없겠지만 반짝였다는 그 사실마저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해지는 우유니에서의 점프!


+ 덧. 

우유니에서 투어를 할 때 만났던 어떤 분께선 약혼자 분과 5년 동안 30-40개국을 다니신 분이었다. 투어를 마치고 마을로 돌아가는 지프차에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렇게 들은 것들이 또 어딘가로 떠나게 만들어 주더라고요' 

라고 하시며 피곤한 와중에도 여행 다닌 이곳저곳들의 얘기를 들려주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이렇게 쓰는 나의 여행 이야기도 미래의 나를, 또는 어느 누군가를 과감히 떠나게 만드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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