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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정 Apr 03. 2016

이카, 사막의 일몰

오아시스 마을에 해가 지면

여행을 떠나기 전, 꽃보다 청춘 페루 편을 정주행 했다. 유희열, 이적, 윤상 세 뮤지션이 뮤지션의 옷을 벗고 단지 친한 세 친구로 함께 떠난 페루 여행이었다. 그들이 가는 곳, 보는 것, 먹는 것들 내가 곧 가게 될 곳이라 생각하니 하나하나 다 눈여겨보게 됐다. 내 여행의 예고편이라 생각하며 페루 여행을 예습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바로 이카의 사막 마을이었다. 그들이 사막에 앉아 함께 노을을 바라보는 모습은 나의 머릿속에 강하게 남았다. 그리고 그 사막은 우리의 여행일정에 자연스레 포함되었다.


페루의 수도인 리마에 도착한 다음날 곧바로 이카로 향했다. 리마에서 이카까지는 버스로 3시간. 버스에서 내리면 택시로 마을까지 이동해야 한다. 이곳의 택시는 한국에 없어진 지 오래인 티코이다. 다섯 명이 몸을 욱여넣은 작은 티코에 흥이 많은 택시운전사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달렸다. 마을이 가까워지자 점점 사막이 보이기 시작했다. 파란 하늘 아래 가장 높게 보이는 건 고운 모래가 만들어낸 능선들이었다.


사막 한가운데 만들어진 오아시스 마을. 오아시스의 잔잔한 평화로움과 동시에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라 특유의 활기가 있었다. 그림같이 고요한 모래사막과 오아시스, 야자수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이국적이기 그지없었다.

잔잔한 오아시스는 거울이 된다.


숙소를 잡고 4시 반부터 6시까지 하는 투어를 신청했다. 투어에는 버기카를 타고 사막을 달리는 버기 투어와 샌드 보딩 투어가 함께 포함되어 있었다. 창문 없이 뻥 뚫린 버기카에 이스라엘에서 온 청년들과 미국에서 온 노부부와 우리 일행 다섯 명이 탑승했다. 드디어 사막 한 가운데로 출발이다.

버기카는 부릉부릉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사막의 경사들을 오르락내리락 달리기 시작했다. 롤러코스터처럼 붕 떴다가 쿵쿵 엉덩방아를 찧기를 반복하며 사막의 경사를 달리면 사람들의 함성소리도 함께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했다.

끝없는 사막위를 내달린다.


한참 동안 버기카로 스릴 있게 사막을 가로지르고 나면 적당한 곳에 내린다. 이 곳에서 사진을 찍고 샌드 보딩 투어를 할 수 있다. 보드를 하나씩 받아 들고 보드 밑면에 왁스칠을 꼼꼼히 한다. 모래를 매끄럽게 내려갈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보드에 엎드려 보드 앞쪽의 벨트를 꽉 잡고 기다리면, 하나, 둘, 셋 하고 아저씨가 힘차게 밀어줌과 동시에 칼날처럼 매끄러운 모래사막 위를 빠르게 하강한다. ‘아아아 아아아악’ 사람들이 저마다 내지르는 비명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모래 위를 타고 내려가 몇 번을 구르다 보면 너도나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래 범벅이 되어 있다.

밑에서 사막을 올려다보면 능선위의 사람들이 조그맣게 보인다.

신나게 버기 투어와 샌드 보딩을 즐기고 난 후, 버기카는 우리를 태우고 다시 어디론가 향했다. 달려가다 보니 저 멀리 사막의 지평선으로 해가 넘어가려 하고 있었다. 일몰을 보기 위해 버기 차들이 하나 둘 모여있었고, 사람들은 연인들과, 친구들과 어깨를 기대고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몰을 보기위해 달려가는 길

사막에서의 일몰이라니... 바람이 부는 방향대로 조용히 흩날리는 모래들. 그렇게 수많은 시간 동안 불어온 많고 많은 바람의 움직임대로 만들어진 사막의 능선들. 그 뒤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붉은 해.

우리가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그 순간에도 해는 빠르게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해가 지평선 뒤로 사라지자 해가 남긴 붉은색의 여운이 하늘에 남아 은은히 퍼졌다. 처음엔 보랏빛, 나중엔 주황빛, 노랑빛으로...

빠르게 사라지는 해



일몰을 보고 돌아가는 길, 이제 투어가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버기카가 또 한번 멈춰 섰다. 뭔가 싶어 내려보았다가 그 자리에서 멈춰스고야 말았다.

해질녘의 오아시스 마을

사막 한가운데의 오아시스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높은 사막 위에서 내려다본 마을은 너무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해가 저무는 저녁, 마을에는 하나, 둘 불빛이 켜지며 어둠을 맞고 있었고 작은 배가 오아시스에서 여유로이 노를 젓고 있었다. 사막 위에 앉아 평화롭기 그지없는 풍경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으니 잠시 현실 속을 벗어난 것 같았다. 어릴 적에 읽던 동화책의 한 장면 속에 들어온 느낌이랄까. '옛날옛적에 끝도 없는 사막 한가운데 오아시스 마을이 있었는데...' 로 시작하는 그런 이야기말이다. 이토록 평화롭고 아름다울 수 있을까... 내가 있는 시공간이 동화 속인 것 같은 순간. 여행은 인생에서 그런 순간을 가능하게 한다.


이카의 오아시스 마을, 와카치나 에서의 하루가 그렇게 저물고 있었다.

해질녘 사막의 실루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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